"키워드 : 백파_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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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언(尙彦. 1707~1791)은 조선 후기 편양파(鞭羊派) 승려로 『화엄청량소은과(華嚴淸凉疏隱科)』, 『구현기(鉤玄記)』 등을 저술한 화엄학자이다. 선운사(禪雲寺)에서 출가했고, 호암 체정(虎巖體淨)의 편양파 주류 법맥을 이었으며, 함양 영원사(靈源寺)에서 입적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화엄 강학과 연구에 평생을 전념했으며, 연담 유일(蓮潭有一), 인악 의첨(仁岳義沾), 백파 긍선(白坡亘璇) 등에게 화엄을 가르쳤다. 가흥대장경 복각본인 징관(澄觀)의 『화엄경소초』 판목을 교감하고 판각한 후 지리산 영각사(靈覺寺)에 보관하였다.
상언 (尙彦)
상언(尙彦. 1707~1791)은 조선 후기 편양파(鞭羊派) 승려로 『화엄청량소은과(華嚴淸凉疏隱科)』, 『구현기(鉤玄記)』 등을 저술한 화엄학자이다. 선운사(禪雲寺)에서 출가했고, 호암 체정(虎巖體淨)의 편양파 주류 법맥을 이었으며, 함양 영원사(靈源寺)에서 입적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화엄 강학과 연구에 평생을 전념했으며, 연담 유일(蓮潭有一), 인악 의첨(仁岳義沾), 백파 긍선(白坡亘璇) 등에게 화엄을 가르쳤다. 가흥대장경 복각본인 징관(澄觀)의 『화엄경소초』 판목을 교감하고 판각한 후 지리산 영각사(靈覺寺)에 보관하였다.
『선문사변만어』는 조선 후기에 초의 의순(意恂)이 긍선(亘璇)의 『선문수경(禪文手鏡)』에 대해 비판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불교서로, 19세기 선 논쟁을 촉발시킨 저술이다. 근기의 우열에 의해 선을 차등화하고 구분지은 긍선의 주장은 문제가 있으며, 방편상 사람을 기준으로 조사선(祖師禪)과 여래선(如來禪), 법을 기준으로 격외선(格外禪)과 의리선(義理禪)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조사선과 여래선을 격외의 선에 넣고 의리선만 별도로 낮게 보는 것은 잘못이며 조사선=격외선, 여래선=의리선의 구도가 전통적 통설이라는 논지이다.
선문사변만어 (禪門四辨漫語)
『선문사변만어』는 조선 후기에 초의 의순(意恂)이 긍선(亘璇)의 『선문수경(禪文手鏡)』에 대해 비판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불교서로, 19세기 선 논쟁을 촉발시킨 저술이다. 근기의 우열에 의해 선을 차등화하고 구분지은 긍선의 주장은 문제가 있으며, 방편상 사람을 기준으로 조사선(祖師禪)과 여래선(如來禪), 법을 기준으로 격외선(格外禪)과 의리선(義理禪)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조사선과 여래선을 격외의 선에 넣고 의리선만 별도로 낮게 보는 것은 잘못이며 조사선=격외선, 여래선=의리선의 구도가 전통적 통설이라는 논지이다.
선문수경(禪文手鏡)은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승려 백파 긍선(白坡亘璇)이 선을 조사선(祖師禪), 여래선(如來禪), 의리선(義理禪) 3종으로 나누고 선문 5종 가운데 임제종(臨濟宗)의 우수성을 드러낸 책이다. 이 책은 조사선 중심의 선종 우위론을 내세웠고 선종 5가 중에서 임제종이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긍선은 조사선, 여래선을 격외선에 함께 배정하고 교학을 포함하는 의리선을 한 차원 낮은 등급의 것으로 판정했다. 이 책의 관점은 이후 초의 의순으로부터 비판받으며 선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선문수경 (禪文手鏡)
선문수경(禪文手鏡)은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승려 백파 긍선(白坡亘璇)이 선을 조사선(祖師禪), 여래선(如來禪), 의리선(義理禪) 3종으로 나누고 선문 5종 가운데 임제종(臨濟宗)의 우수성을 드러낸 책이다. 이 책은 조사선 중심의 선종 우위론을 내세웠고 선종 5가 중에서 임제종이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긍선은 조사선, 여래선을 격외선에 함께 배정하고 교학을 포함하는 의리선을 한 차원 낮은 등급의 것으로 판정했다. 이 책의 관점은 이후 초의 의순으로부터 비판받으며 선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선문염송기는 고려 보조 지눌의 제자 진각 혜심이 펴낸 『선문염송집』에 대한 조선 후기의 주석서이다. 『선문염송』은 선종의 역대 공안과 법어, 게송 등을 집성한 책으로 조선 전기에는 선종 승과의 시험과목이었고 조선 후기에는 이력과정의 최고 단계인 대교과에 들어가는 등 매우 중시되며 큰 영향력을 미쳤다. 백파 긍선의 『선문염송사기』를 비롯하여 조선 후기에 강학 교육을 통해 전승된 다양한 필사본들이 전해진다.
선문염송기 (禪門拈頌記)
선문염송기는 고려 보조 지눌의 제자 진각 혜심이 펴낸 『선문염송집』에 대한 조선 후기의 주석서이다. 『선문염송』은 선종의 역대 공안과 법어, 게송 등을 집성한 책으로 조선 전기에는 선종 승과의 시험과목이었고 조선 후기에는 이력과정의 최고 단계인 대교과에 들어가는 등 매우 중시되며 큰 영향력을 미쳤다. 백파 긍선의 『선문염송사기』를 비롯하여 조선 후기에 강학 교육을 통해 전승된 다양한 필사본들이 전해진다.
『선문재정록(禪門再正錄)』은 조선 말과 근대기의 승려 진하 축원(震河竺源)이 백파 긍선(白坡亘璇)과 초의 의순(草衣意恂) 이후의 선 논쟁을 비판적으로 정리한 불교서이다. 『선문재정록』은 기존의 선 논쟁에 나타난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선 논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책이다.
선문재정록 (禪門再正錄)
『선문재정록(禪門再正錄)』은 조선 말과 근대기의 승려 진하 축원(震河竺源)이 백파 긍선(白坡亘璇)과 초의 의순(草衣意恂) 이후의 선 논쟁을 비판적으로 정리한 불교서이다. 『선문재정록』은 기존의 선 논쟁에 나타난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선 논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책이다.
장성 백양사 각진국사 복구 진영은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진영이다. 세로 131㎝, 가로 85㎝로, 백양사를 중건한 각진국사 복구(1270~1355)의 진영이다. 화기에 의하면 1825년에 장유가 선운사 내원암에서 그려서 백양사에 봉안하였다. 그림은 오른쪽을 향하여 3/4분면의 모습을 취한 채 왼손에 주장자를 들고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스님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왼쪽 상단에는 '각진국사(覺眞國師)'라고 세로로 적혀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 선승인 백파 긍선이 이 진영의 증명을 맡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장성 백양사 각진국사 복구 진영 (長城 白羊寺 覺眞國師 復丘 眞影)
장성 백양사 각진국사 복구 진영은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진영이다. 세로 131㎝, 가로 85㎝로, 백양사를 중건한 각진국사 복구(1270~1355)의 진영이다. 화기에 의하면 1825년에 장유가 선운사 내원암에서 그려서 백양사에 봉안하였다. 그림은 오른쪽을 향하여 3/4분면의 모습을 취한 채 왼손에 주장자를 들고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의자에 앉아 있는 스님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왼쪽 상단에는 '각진국사(覺眞國師)'라고 세로로 적혀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 선승인 백파 긍선이 이 진영의 증명을 맡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