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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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신은 조선 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15년(중종 10)에 출생하여 1590년(선조 23)에 사망했다. 자는 과회, 호는 소재이다. 을사사화 때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진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이언적에게 배우고, 이황, 김인후 등과도 학문을 논하였다. 경일(敬一) 공부를 강조하고, 도심미발(道心未發)·인심이발설(人心已發說)을 주장했다. 충주의 팔봉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소재집』이 있다.
노수신 (盧守愼)
노수신은 조선 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15년(중종 10)에 출생하여 1590년(선조 23)에 사망했다. 자는 과회, 호는 소재이다. 을사사화 때 순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진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이언적에게 배우고, 이황, 김인후 등과도 학문을 논하였다. 경일(敬一) 공부를 강조하고, 도심미발(道心未發)·인심이발설(人心已發說)을 주장했다. 충주의 팔봉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소재집』이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진주여자고등학교 (晉州女子高等學校)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조선 전기에, 수찬,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권오복 (權五福)
조선 전기에, 수찬,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재담은 전통 놀이판이나 일상생활에서 구전되어 온 재치 있는 말과 웃기는 이야기이다. 우리말 큰사전에 “재치 있게 말하는 재미스런 말.”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그 형식이 서사적일 수도 있고 단문 형식의 말도 포함될 수 있다. 전통적 전문 놀이판에서 해학과 골계미를 자아내는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거나 우리의 일상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말하기 형태로 향유되기도 한다.
재담 (才談)
재담은 전통 놀이판이나 일상생활에서 구전되어 온 재치 있는 말과 웃기는 이야기이다. 우리말 큰사전에 “재치 있게 말하는 재미스런 말.”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그 형식이 서사적일 수도 있고 단문 형식의 말도 포함될 수 있다. 전통적 전문 놀이판에서 해학과 골계미를 자아내는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거나 우리의 일상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말하기 형태로 향유되기도 한다.
사리원시는 북한의 황해북도 북서쪽에 있는 시이다. 북쪽과 동쪽은 봉산군, 남서쪽은 은파군, 서쪽은 재령강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재령군과 접해 있다. 사리원이라는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사리원은 행정단위 명칭이 아니라 역원, 역참이었다. 경의선 황해청년선(사리원∼해주)의 분기점이며, 평양과 개성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통하는 교통의 요지다. 사리원시 봉산군은 봉산탈춤의 발상지로 5월 단오절에는 경암루 아래에서 놀이를 했다. 황해북도의 교육·문화뿐 아니라 경제도시로서도 크게 발전했다.
사리원시 (沙里院市)
사리원시는 북한의 황해북도 북서쪽에 있는 시이다. 북쪽과 동쪽은 봉산군, 남서쪽은 은파군, 서쪽은 재령강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재령군과 접해 있다. 사리원이라는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사리원은 행정단위 명칭이 아니라 역원, 역참이었다. 경의선 황해청년선(사리원∼해주)의 분기점이며, 평양과 개성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통하는 교통의 요지다. 사리원시 봉산군은 봉산탈춤의 발상지로 5월 단오절에는 경암루 아래에서 놀이를 했다. 황해북도의 교육·문화뿐 아니라 경제도시로서도 크게 발전했다.
「봉산탈춤」,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덧뵈기」에 등장하는 배역.
샌님
「봉산탈춤」,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덧뵈기」에 등장하는 배역.
해방 이후 「봉산탈춤」 놀량 창과 사자마부역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민천식 (閔千植)
해방 이후 「봉산탈춤」 놀량 창과 사자마부역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조선 전기에, 원통산 밑에 집을 짓고 서책과 자연에 묻혀 일생을 보낸 학자.
성윤해 (成允諧)
조선 전기에, 원통산 밑에 집을 짓고 서책과 자연에 묻혀 일생을 보낸 학자.
해방 이후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봉산탈춤」 피리, 해금 악사 전승자로 인정된 보유자.
오명옥 (吳明玉)
해방 이후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봉산탈춤」 피리, 해금 악사 전승자로 인정된 보유자.
조선 전기에, 홍문박사, 검열 등을 역임한 문신.
권장 (權檣)
조선 전기에, 홍문박사, 검열 등을 역임한 문신.
해방 이후 「봉산탈춤」 목중, 취발이, 사자 역 전승자로 인정된 보유자.
이근성 (李根成)
해방 이후 「봉산탈춤」 목중, 취발이, 사자 역 전승자로 인정된 보유자.
해방 이후 봉산탈춤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김선봉 (金先峰)
해방 이후 봉산탈춤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신양군은 평안남도의 북창군·맹산군·양덕군·회창군·성천군과 함경남도 요덕군으로 둘러싸인 평안남도 동남쪽의 군이다. 1952년 양덕군과 성천군 일부를 분리해 신설되었다. 명칭은 새로운 양덕이라는 뜻이다. 산지가 대부분인 내륙 산간지대로, 비류강과 평원천이 흐르며 농경지는 군 면적의 13%에 불과하다. 주요 경제는 광공업으로, 납·아연을 생산하는 신양광산과 안티몬을 생산하는 인평광산이 중심이다. 고려시대에 쌓은 수덕성터가 남아 있으며, 백운사와 관성이봉수, 문명리고인돌 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신양군 (新陽郡)
신양군은 평안남도의 북창군·맹산군·양덕군·회창군·성천군과 함경남도 요덕군으로 둘러싸인 평안남도 동남쪽의 군이다. 1952년 양덕군과 성천군 일부를 분리해 신설되었다. 명칭은 새로운 양덕이라는 뜻이다. 산지가 대부분인 내륙 산간지대로, 비류강과 평원천이 흐르며 농경지는 군 면적의 13%에 불과하다. 주요 경제는 광공업으로, 납·아연을 생산하는 신양광산과 안티몬을 생산하는 인평광산이 중심이다. 고려시대에 쌓은 수덕성터가 남아 있으며, 백운사와 관성이봉수, 문명리고인돌 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해방 이후 「봉산탈춤」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김용익 (金龍益)
해방 이후 「봉산탈춤」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해방 이후 「봉산탈춤」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김유경 (金裕慶)
해방 이후 「봉산탈춤」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조선 후기에, 『청헌집』 등을 저술한 학자.
김주만 (金胄萬)
조선 후기에, 『청헌집』 등을 저술한 학자.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마현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장기초등학교 (長耆初等學校)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마현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조선 후기에, 봉산서원을 중건하였으며, 『가암집』 등을 저술한 학자.
전익구 (全翼耉)
조선 후기에, 봉산서원을 중건하였으며, 『가암집』 등을 저술한 학자.
『봉산군여지지』는 1899년 황해도 봉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2책 51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2책은 채색 지도 1장으로 구성하였다. 19세기 말 봉산군의 호구 현황을 기록해 놓았다. 그 밖에 문화적 배경 및 행정 현황 등 당대의 지역 사정을 수록하여 지역사를 연구하는 데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봉산군여지지 (鳳山郡輿地誌)
『봉산군여지지』는 1899년 황해도 봉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2책 51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2책은 채색 지도 1장으로 구성하였다. 19세기 말 봉산군의 호구 현황을 기록해 놓았다. 그 밖에 문화적 배경 및 행정 현황 등 당대의 지역 사정을 수록하여 지역사를 연구하는 데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송금사목은 조선 후기 국용 목재를 공급하는 소나무 숲을 지정하고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규정이다. 전선과 관곽 등 국용 목재를 공급하기 위하여 우량한 소나무 숲을 봉산으로 지정하고 봉산을 관리하기 위한 규정을 담았다. 조선 후기에 제정된 전국 단위 송금사목은 1684년의 「제도연해송금사목」과 1788년의 「제도송금사목」이 있다. 두 송금사목은 조선 후기 산림정책과 국방정책의 핵심인 송정의 목적과 이행 수단인 봉산의 설정과 구체적 관리 방안을 확인할 수 있는 참고 자료이다.
송금사목 (松禁事目)
송금사목은 조선 후기 국용 목재를 공급하는 소나무 숲을 지정하고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규정이다. 전선과 관곽 등 국용 목재를 공급하기 위하여 우량한 소나무 숲을 봉산으로 지정하고 봉산을 관리하기 위한 규정을 담았다. 조선 후기에 제정된 전국 단위 송금사목은 1684년의 「제도연해송금사목」과 1788년의 「제도송금사목」이 있다. 두 송금사목은 조선 후기 산림정책과 국방정책의 핵심인 송정의 목적과 이행 수단인 봉산의 설정과 구체적 관리 방안을 확인할 수 있는 참고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