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북경"
검색결과 총 6건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신한민보 및 신한국보 주필, 임시정부 외무총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박용만 (朴容萬)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신한민보 및 신한국보 주필, 임시정부 외무총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회동관(會同館)은 북경에 파견된 조선 사행단이 머물던 숙소다. 환영 예절인 하마연(下馬宴)과 환송 예절인 상마연(上馬宴)이 거행된 곳이며, 중국인과 유구 사신들이 찾아와서 필담을 나누며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학문적 교류를 행하던 곳이다. 또 사행단이 머무는 동안 역관과 수행원들 중심으로 중국 상인들과 개시, 후시무역을 행하던 무역 거점이기도 했다.
회동관 (會同館)
회동관(會同館)은 북경에 파견된 조선 사행단이 머물던 숙소다. 환영 예절인 하마연(下馬宴)과 환송 예절인 상마연(上馬宴)이 거행된 곳이며, 중국인과 유구 사신들이 찾아와서 필담을 나누며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학문적 교류를 행하던 곳이다. 또 사행단이 머무는 동안 역관과 수행원들 중심으로 중국 상인들과 개시, 후시무역을 행하던 무역 거점이기도 했다.
『감계사등록』은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의 국경선을 획정할 때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가 작성한 등록이다. 1860년 북경회담으로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하자, 조선과 청은 두만강과 백두산 인근의 국경을 정비하는 감계 회담을 추진하였다. 당시 안변부사였던 이중하는 두 차례 회담에 조선 대표로 파견되었다. 그는 회담 진행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와 고종에게 직접 보고한 계초(啓草), 별단초(別單草) 및 회담 내용인 담초(談草) 등을 날짜순으로 정리하였다. 19세기 말 한국 북방 영토 연구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감계사등록 (勘界事謄錄)
『감계사등록』은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의 국경선을 획정할 때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가 작성한 등록이다. 1860년 북경회담으로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하자, 조선과 청은 두만강과 백두산 인근의 국경을 정비하는 감계 회담을 추진하였다. 당시 안변부사였던 이중하는 두 차례 회담에 조선 대표로 파견되었다. 그는 회담 진행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와 고종에게 직접 보고한 계초(啓草), 별단초(別單草) 및 회담 내용인 담초(談草) 등을 날짜순으로 정리하였다. 19세기 말 한국 북방 영토 연구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고려 전기에, 서북면판병마사, 중추사,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관리·공신.
유소 (柳韶)
고려 전기에, 서북면판병마사, 중추사,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관리·공신.
중국 요령성 본계시(本溪市) 신성지향 산성자촌 묘후산(廟后山)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사람뼈·동물화석 등이 발견된 동굴. 구석기유적.
요령 묘후산 유적 (遼寧 廟后山 遺蹟)
중국 요령성 본계시(本溪市) 신성지향 산성자촌 묘후산(廟后山)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사람뼈·동물화석 등이 발견된 동굴. 구석기유적.
남공선은 고려공산청년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의 기관지 『한족공보』의 주필과 하바롭스크에서 발행하던 한글 신문인 『선봉(先鋒)』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집행위원을 지낸 바 있다.
남공선 (南公善)
남공선은 고려공산청년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의 기관지 『한족공보』의 주필과 하바롭스크에서 발행하던 한글 신문인 『선봉(先鋒)』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집행위원을 지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