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공선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한족공보(韓族公報)』 주필과 고려공산청년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이칭
이명
남성우(南性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8년
사망 연도
1924년
출생지
함경남도 원산
주요 경력
『한족공보』 주필,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집행위원
대표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1996)
내용 요약

남공선은 고려공산청년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의 기관지 『한족공보』의 주필과 하바롭스크에서 발행하던 한글 신문인 『선봉(先鋒)』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집행위원을 지낸 바 있다.

정의
일제강점기 『한족공보(韓族公報)』 주필과 고려공산청년회 집행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인적 사항

남공선(南公善)은 1888년생으로, 함경남도 원산 출신이다. 이명은 남성우(南性祐)이다. 지린성〔吉林省〕 훈춘현 대황구의 북일중학(北一中學)에서 역사 교사로 재직하였다.

주요 활동

1917년 5월 21일 니콜스크우수리스키에서 개최된 노령한인협회발기회에 참여하였고, 그 결과 조직된 전로한족회(全露韓族會) 중앙총회에도 참가하였다. 『 청구신보(靑丘新報)』를 개칭한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의 기관지 『한족공보(韓族公報)』의 주필로서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이후 노령과 북간도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18일 김립(金立) · 현순(玄楯)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특사로서 국무총리 이동휘(李東輝)와 함께 상하이로 왔다. 1920년 9월 베이징에서 박용만(朴容萬), 신숙(申肅) 등과 함께 북경군사통일회(北京軍事統一會)를 결성하였다.

1921년 5월 이르쿠츠크에서 조직된 고려공산당에 참여하였다. 그해 8월 베이징에서 조훈(趙勳)의 주도로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이 결성될 때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대표의 자격으로 참가하였으며, 조훈 · 이괄(李适) · 김호반(金浩盤) · 박헌영(朴憲永) 등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3년부터 연해주 하바롭스크에서 발행되던 한글 신문인 『 선봉(先鋒)』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임경석, 『한국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강만길·성대경 편,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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