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공선(南公善)은 1888년생으로, 함경남도 원산 출신이다. 이명은 남성우(南性祐)이다. 지린성〔吉林省〕 훈춘현 대황구의 북일중학(北一中學)에서 역사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7년 5월 21일 니콜스크우수리스키에서 개최된 노령한인협회발기회에 참여하였고, 그 결과 조직된 전로한족회(全露韓族會) 중앙총회에도 참가하였다. 『 청구신보(靑丘新報)』를 개칭한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의 기관지 『한족공보(韓族公報)』의 주필로서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이후 노령과 북간도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18일 김립(金立) · 현순(玄楯)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특사로서 국무총리 이동휘(李東輝)와 함께 상하이로 왔다. 1920년 9월 베이징에서 박용만(朴容萬), 신숙(申肅) 등과 함께 북경군사통일회(北京軍事統一會)를 결성하였다.
1921년 5월 이르쿠츠크에서 조직된 고려공산당에 참여하였다. 그해 8월 베이징에서 조훈(趙勳)의 주도로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이 결성될 때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대표의 자격으로 참가하였으며, 조훈 · 이괄(李适) · 김호반(金浩盤) · 박헌영(朴憲永) 등과 함께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3년부터 연해주 하바롭스크에서 발행되던 한글 신문인 『 선봉(先鋒)』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