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준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동만도 조직부장, 중국공산당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이칭
이명
마준(馬俊), 마문현(馬文賢), 마철(馬哲)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4년(고종 41)
사망 연도
1945년
출생지
함경북도 길주
주요 경력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 조직부장|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
관련 사건
간도 5·30봉기
내용 요약

마준은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 조직부장과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를 역임하였다. 검거된 후 옥중에서 변절하면서 만주국 헌병대 분재소 특수사업반 반장과 헌병대 특무로 활동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동만도 조직부장, 중국공산당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인적 사항

마준(馬駿)은 함경북도 길주 출신으로, 마진(馬晉)의 아들이다. 이명은 마준(馬俊), 마문현(馬文賢), 마철(馬哲)이다. 1905년 부모를 따라 북간도 허룽현〔和龍縣〕으로 이주하였고, 용정(龍井)의 명동학교(明東學校)를 졸업하였다. 1923년 블라디보스토크 체류 중 사회주의사상을 수용하였다.

주요 활동

1927년 3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고, 그해 10월 옌지현〔延吉縣〕 옹성랍자(甕聲磖子)에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구역국 제13 야체이카 소속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달 발생한 제1차 간도공산당사건을 피한 후, 1928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東滿道)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4월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의 지시로 박윤세(朴允世)와 함께 동만주로 파견되어, 전동만폭동위원회 등을 조직하였다. 그해 5월 중국공산당 연변특별지부를 도와 ‘간도 5 · 30봉기’를 지휘하였다. 같은 해 6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다. 8월에는 옌볜〔延邊〕 제1차 당원대표대회에 참석하여 중국공산당 연화중심현위원회(延和中心縣委員會)를 결성하고 조직부장이 되었다. 11월에는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1930년 12월 용정에서 간도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되었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변절하였다. 출옥 후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43년 조양천(朝陽川)에서 만주국 헌병대 분재소 특수사업반 반장과 헌병대의 특무로 활동하였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연변인민민주대동맹(延邊人民民主大同盟)에 참가하였지만, 10월 친일 혐의로 자발적 무장대인 별동대에 체포되어 처형당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강만길·성대경,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연변당사 사건과 인물』(연변인민출판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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