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고려공산청년회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
이칭
이명
김화곤(金華坤), 추광(秋光)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9년(고종 36)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전라북도 익산
주요 경력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대표 상훈
대통령 표창(1980)
내용 요약

김철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전라북도 익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울파 조직인 고려공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한 서울신파이다. 고려공산청년동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합청(合靑)’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고려공산청년회의 책임비서로 활동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고려공산청년회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
인적 사항

전라북도 익산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조선인에 대한 민족 차별을 겪으면서 민족운동에 투신할 결심을 한 후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주요 활동

1921년 10월 대전청년구락부를 조직하였고, 1924년 1월에는 전북민중운동자동맹의 회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3월 전북청년대회 준비회에서 활동하였고, 4월에는 전북기자단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즈음 서울파가 주도한 전조선노농대회 준비위원회에 익산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5년 말경 고려공산청년동맹 중앙위원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5년 10월 전북지역 사회운동가들의 모임인 병인지우회(丙寅知友會)가 사상 운동단체인 시월당(十月黨)으로 개편되었는데, 1926년 1월 10월 당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6년 2월 조직된 익산노동연맹의 상무집행위원과 4월 조직된 전북노동연맹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서울신파’로서 그해 7월 진행된 고려공산청년동맹과 조선공산당의 공청 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가 통합하여 통일된 고려공산청년회를 조직하는 ‘합청(合靑)’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다. 1926년 12월 고려공산청년회에서 조기승(趙紀勝)을 책임자로 하는 비밀 조직인 야체이카〔세포〕에 소속되었다. 이후 고려공산청년회의 중앙집행위원을 거쳐, 1927년 11월 하필원(河弼源)의 후임으로 책임비서가 되었다. 1927년부터 신간회 익산지회에서 활동하였다.

1928년 1월 30일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30년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구속 중인 1930년 10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4년 4월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전명혁, 『1920년대 한국사회주의운동연구』(선인, 2006)
강만길·성대경 편,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논문

박종린, 「1920년대 ‘통일’조선공산당의 결성과정」(『한국사연구』 102,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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