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전(獨孤佺)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10년간 한학을 수학하였다. 미곡상을 하였으나 실패하고 1919년 중국 하얼빈〔哈爾濱〕으로 갔다. 1921년 러시아 치타의 공산학교에서 6개월간 수학하였다.
독고전은 1921년 5월 이르쿠츠크에서 조직된 고려공산당에 참여하였다.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코민테른집행위원회 주최로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에 신의주 부두조합 대표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같은 해 10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의 통합을 위해 울란우데(베르흐네우딘스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연합대회에 참석하였다.
1923년 6월 귀국 후 신의주에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11월 조선일보사 신의주 지국장이 되었고, 1925년 5월에는 신의주의 국경청년연맹을 조직하고 검사위원이 되었다. 비밀결사 운동에도 관여하여 1924년 3월 코르뷰로 국내부의 신의주 야체이카 책임자가 되었다.
1925년 4월 17일 개최된 조선공산당 창립대회에는 신의주 지역 대표로 참가하였다. 이후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해외 연락책을 담당하였다. 그해 12월 조선공산당 제1차 탄압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다.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1929년 8월 만기 출옥하였다.
출옥 후 1931년 5월 김단야(金丹冶)가 주도한 ‘국제선 공산주의그룹’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1932년경 변절하여 일제의 밀정(密偵)으로 활동하면서 김명시(金命時)가 검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