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문(裵致文)은 1890년 전라남도 목포 출생으로,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이명은 홍길(洪吉)이다.
1919년 4월 8일 곽우영(郭宇英) · 남궁혁(南宮赫) · 서상봉(徐相鳳) 등과 함께 목포의 남교동과 죽동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그해 6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
1924년 목포무산청년회에 참여하였고, 1925년 1월에는 무목청년연맹(務木靑年聯盟)을 조직하였다. 그 해 8월에는 목포 지역의 사상운동 단체인 전위동맹을 조직하였다. 이후 무목노농연맹과 목포노동총동맹 조직을 주도하였다.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1926년 6월경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고, 1927년 9월에는 신간회 목포지회에 참여하였다. 그해 9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28년 2월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은 후 1929년 3월 만기 출옥하였다. 출옥 후 신간회 목포지회 활동을 재개하는 한편, 1930년 2월경 김철수(金錣洙)가 주도한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의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에 참여하였다. 1931년 7월 신간회 목포지회장이 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