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브나로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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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는 1930년대 농촌계몽운동을 다룬 심훈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이다.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되어 1935년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127회 연재되었다. 이후 1936년 한성도서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동아일보사의 브나로드운동(Vnarod運動)이 전개되었던 때 창작된 소설로서, 박동혁과 채영신이 농촌으로 내려가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상록수 (常綠樹)
『상록수』는 1930년대 농촌계몽운동을 다룬 심훈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이다.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되어 1935년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127회 연재되었다. 이후 1936년 한성도서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동아일보사의 브나로드운동(Vnarod運動)이 전개되었던 때 창작된 소설로서, 박동혁과 채영신이 농촌으로 내려가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원의 미소』는 『조선중앙일보』에 1933년 7월 19일부터 1934년 1월 10일까지 총 171회에 걸쳐 연재된 심훈의 장편소설이다. 연재될 당시 제목과 함께 ‘봄의 서곡’라는 원명(原名)이 함께 부기되어 있었다. 1926년에 발표된 중편소설 「탈춤」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기법상으로 진일보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후 1935년에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됐다.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운동, 농촌으로의 정착 과정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영원의 미소 (永遠의 微笑)
『영원의 미소』는 『조선중앙일보』에 1933년 7월 19일부터 1934년 1월 10일까지 총 171회에 걸쳐 연재된 심훈의 장편소설이다. 연재될 당시 제목과 함께 ‘봄의 서곡’라는 원명(原名)이 함께 부기되어 있었다. 1926년에 발표된 중편소설 「탈춤」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기법상으로 진일보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후 1935년에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됐다.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운동, 농촌으로의 정착 과정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1921년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뒤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를 위한 브나로드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신사참배 거부를 옹호·지지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한국민주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수석총무에 추대되었다.
송진우 (宋鎭禹)
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1921년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뒤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를 위한 브나로드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신사참배 거부를 옹호·지지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한국민주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수석총무에 추대되었다.
김두석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부터 1942년 일제에게 붙잡히기 전까지 평양과 경상남도 곳곳에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1944년 9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9일에 풀려났다. 2004년 사망하였으며, 같은 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김두석 (金斗石)
김두석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부터 1942년 일제에게 붙잡히기 전까지 평양과 경상남도 곳곳에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1944년 9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9일에 풀려났다. 2004년 사망하였으며, 같은 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