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경상남도 마산부(馬山府, 현 경상남도 창원시) 성호동(城湖洞)에서 태어났다. 호는 정희(貞熙)이다.
1930년 3월 마산의 사립 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를 졸업하고, 부산 동래의 사립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를 거쳐 1934년 3월부터 모교인 의신여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이때 그는 브나로드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는데, 홍성은(洪聖恩)과 함께 마산 지역 책임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브나로드운동은 1931년부터 1934년까지 동아일보사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일으킨 농촌 계몽운동의 하나이다.
1930년대 중반 일제는 한국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김두석도 1939년 7월 마산경찰서로부터 신사참배를 강요받아 의신여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한상동(韓尙東, 19011976) 목사의 주선으로 1940년 4월 평양여자신학원(平壤女子新學院)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주기철(朱基徹, 18971944) 목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과 함께 본격적으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같은 해 5월 붙잡혀 28일간 평양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김두석은 경상남도 각지 교회를 순회하며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지속하였고, 1940년 6월부터 1941년 8월까지 총 3회에 걸쳐 일제에 붙잡혔다. 그러다가 1942년 8월 마산경찰서에 붙잡혀 1944년 9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월 19일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5년 발간된 『두 감나무 고목에 활짝 핀 무궁화』라는 수기(手記)가 있다. 김두석의 삶과 신사참배, 옥고 생활 등의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004년 사망하였으며, 같은 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