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복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적위대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11년
사망 연도
1933년
출생지
함경남도 정평군
주요 경력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조직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관련 사건
1930년대 혁명적 노동조합운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고수복은 일제강점기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적위대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0년대에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에 참가하여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적위대 등을 결성하고,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2년 9월에 적색노동조합조직준비위원회 명의의 격문을 살포하는 활동을 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가 이듬해 7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옥고의 여독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1933년 7월 28일 순국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적위대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1911년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선덕면(宣德面) 선덕리(宣德里)에서 태어났다.

주요 활동

정평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1년부터 서울에서 종연방직회사 경성제사공장(京城製絲工場), 경성부영(京城府營) 버스에서 일하였다. 1932년 1월 서울에서 정길성(丁吉成), 김응룡(金應龍), 권오경(權五敬) 등과 좌익노동조합준비회를 결성하기 위해 시내 각 공장을 분담하여 활동하였다. 그 결과 3월에 새로운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 단체로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左翼勞動組合準備委員會)가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비밀을 엄수하면서 동지 규합을 위해 부서를 분담하였는데, 이때 고수복은 선전부 책임을 맡았다. 중국공산당 조선국내공작위원회와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 등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가 1932년 2월 중순에 불기소로 풀려나기도 하였다. 이후 종연방직회사, 대창직물회사, 부영버스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도록 관여하였다.

1932년 8월 중순경 공원회(孔元檜), 문태화(文泰和), 이만규(異晩圭) 등을 중심으로 비밀결사 적위대(赤衛隊)가 결성되었다. 이는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던 혁명적 노동운동 조직들을 총괄 지도 · 통제하는 최고 지도기관이었다. 이에 따라 고수복이 활동하고 있던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도 산하 조직으로 변경되었다.

고수복은 9월 16일 부영버스 차고 내에서 적색노동조합조직준비위원회 명의의 격문을 살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던 중 발각되어 다시 붙잡혔다. 동대문경찰서를 거쳐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조사를 받다가 1933년 7월 19일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7월 28일 복막염이 급격히 악화되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원전

「적위대의 고양 보석중에 영면」(『동아일보』, 1933. 7. 29.)
「보석출옥자 사망에 관한 건」(『사상에 관한 정보』 6, 1933. 7. 28.)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단행본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1』(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위원회 편, 독립기념관, 2020)
『독립유공자공훈록 19』(국가보훈처,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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