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함경북도 경원군(慶源郡)에서 태어났으며, 훈춘[琿春] 호랑이로 불린 독립운동가 황병길(黃炳吉)과 결혼하였다. 남편과 함께 1908년 이전에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였다가, 1911년 12월경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으로 재이주하였다. 둘째 딸 황정신, 셋째 딸 황정일, 막내 아들 황정해 등도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황병길은 1920년 6월 훈춘에서, 김숙경은 1930년 7월 27일 만주에서 순국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 한인사회에서도 여성단체들이 조직되었다. 당시 이를 주도한 인사들은 여권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독립 의식을 함양시키는 여자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앞으로 수행될 독립전쟁에는 여성들도 남자와 동등한 국민 자격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만주 곳곳에서 애국부인회운동이 일어났다.
김숙경이 부회장을 맡은 훈춘대한애국부인회[琿春大韓愛國婦人會]는 1919년 9월경 조직되었다. 당시 훈춘의 박봉식(朴鳳植) 집에서 모임을 갖고, 회장에 주신덕(朱信德), 총무 권정숙, 회계 오신애, 서기 김순희 · 황영은 등으로 임원진을 구성하였다.
훈춘대한애국부인회는 독립운동 후원을 목적으로 여성 교육의 향상, 여권 신장의 도모, 전시 중 상이군인 치료와 구호,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하였다. 실제로 의연금 6천 루블을 모았으며, 반지, 옷감 등을 내다 팔아 군자금으로 지원하였다. 훈춘 등 곳곳에 거주하던 여성 200여 명을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당시 훈춘 대한국민의회를 설립하고 이끌었던 남편 황병길의 후원과 지도가 크게 작용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