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출생 연도는 미상이다.
1943년 당시 중국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의 요릿집에서 일하며, 학병(學兵)으로 끌려온 한인이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입대하는 일을 도왔다. 그러다가 그도 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17일 충칭[重慶]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초기에 총사령부 외에 제1·2·3지대와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제5지대로 편제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42년 조선민족혁명당의 조선의용대가 합류하자, 제1지대로 조선의용대를, 기존의 제1·2·5지대를 통합하여 제2지대로 편성하고, 1945년 초에는 제3지대를 편성하였다. 이 외에도 3전구공작대, 9전구공작대, 토교대(土橋隊)가 있었다.
김영실이 소속된 한국광복군 제3지대의 대대장은 김학규(金學奎)였으며,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 주둔하며 주1활동을 전개하였다. 김학규는 중앙육군군관학교에 한국광복군훈련반을 설치하고, 초모해 온 인원과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들을 훈련하여 광복군으로 편입시켰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김학규는 푸양에서 상하이[上海]로 이동하여 광복군 총사령부 주호판사처(駐滬辦事處)를 담당하였다. 총사령 이청천은 1945년 10월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를 난징[南京]으로 이전하고, 제2지대의 베이징판사처와 제3지대의 베이징지구 특파단을 통합하여 총사령부 직할 판사처로 개편하였다. 그러면서 제3지대의 김학규 등을 상하이로 보내 주호판사처를 담당하게 하였다. 판사처는 한인 동포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면서 한적 장병 인수를 추진하고 귀국을 준비하였다. 김영실도 주호판사처원으로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1945년 10월 순직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