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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등은 신라시대의 최고 관직이다. 상신(上臣)이라고도 한다. 531년에 법흥왕이 처음 설치하였다. 대등(大等)으로 구성된 귀족회의의 주재자로서 신라 귀족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진골 중에서도 이찬(伊飡)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가 임명되었으며 병마사(兵馬事)를 제외한 국사(國事)를 전담하였다. 국왕 중심의 집권체제가 성립되면서 귀족세력을 관료화하여 일원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행정개편의 일환으로 설치된 측면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종신직(終身職)이었으나 국왕이 교체될 때 상대등도 교체되었다. 『삼국사기』에는 43명의 상대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상대등 (上大等)
상대등은 신라시대의 최고 관직이다. 상신(上臣)이라고도 한다. 531년에 법흥왕이 처음 설치하였다. 대등(大等)으로 구성된 귀족회의의 주재자로서 신라 귀족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진골 중에서도 이찬(伊飡)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가 임명되었으며 병마사(兵馬事)를 제외한 국사(國事)를 전담하였다. 국왕 중심의 집권체제가 성립되면서 귀족세력을 관료화하여 일원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행정개편의 일환으로 설치된 측면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종신직(終身職)이었으나 국왕이 교체될 때 상대등도 교체되었다. 『삼국사기』에는 43명의 상대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 신라의 상대등 비담과 명활성을 거점으로 난을 일으킨 관리.
염종 (廉宗)
삼국시대 신라의 상대등 비담과 명활성을 거점으로 난을 일으킨 관리.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선덕여왕 (善德女王)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진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7~654년이며, 신라시대 3인의 여왕 중 한 사람으로,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즉위했다. 즉위하면서 비담의 난을 진압했고,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김유신을 중심으로 방어하는 한편,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신라 문제에 소극적이던 당나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허락받고 긴밀한 외교관계를 구축했다. 의관을 중국식으로 바꿨고 연호도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는 등 한화정책을 폈으며, 집사부 설치, 행정관부의 체계화로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계를 완성했다.
진덕여왕 (眞德女王)
진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47~654년이며, 신라시대 3인의 여왕 중 한 사람으로,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즉위했다. 즉위하면서 비담의 난을 진압했고,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김유신을 중심으로 방어하는 한편,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신라 문제에 소극적이던 당나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허락받고 긴밀한 외교관계를 구축했다. 의관을 중국식으로 바꿨고 연호도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는 등 한화정책을 폈으며, 집사부 설치, 행정관부의 체계화로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계를 완성했다.
삼국시대 신라의 아찬 석품과 함께 모반을 계획한 주모자. 대신.
칠숙 (柒宿)
삼국시대 신라의 아찬 석품과 함께 모반을 계획한 주모자.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