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살리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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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후는 고려 후기 대몽항쟁 때 처인성과 충주성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승려 출신 무신이다. 승려로서 처인성전투에 참여하여 몽골의 장군 살리타이를 죽이는 공을 세웠다. 이후 충주산성 방호별감으로 충주성 전투에도 참여하여 일반 민과 더불어 승리로 이끈 전공을 세웠다. 이런 공로로 종6품의 섭랑장, 정3품의 상장군⋅병마사⋅추밀원부사⋅예부상서로 승진하였고, 마침내 정2품의 수사공 우복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김윤후 (金允侯)
김윤후는 고려 후기 대몽항쟁 때 처인성과 충주성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승려 출신 무신이다. 승려로서 처인성전투에 참여하여 몽골의 장군 살리타이를 죽이는 공을 세웠다. 이후 충주산성 방호별감으로 충주성 전투에도 참여하여 일반 민과 더불어 승리로 이끈 전공을 세웠다. 이런 공로로 종6품의 섭랑장, 정3품의 상장군⋅병마사⋅추밀원부사⋅예부상서로 승진하였고, 마침내 정2품의 수사공 우복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고려 후기에 김구(金坵)가 지은 한시.
과철주 (過鐵州)
고려 후기에 김구(金坵)가 지은 한시.
다루가치 살해사건은 1232년(고종 19) 몽골이 고려에 설치한 다루가치[達魯花赤]를 고려인들이 살해한 사건이다. 다루가치는 몽골의 관직 이름으로서 초기 점령지의 시정관(施政官)으로 창설했다가, 원나라에서는 지방 행정 관청의 감독관으로 배치하였다. 몽골의 기록에 의하면, 1231년(고종 18) 대몽강화(對蒙講和)가 이루어지면서 몽골에서 다루가치를 고려에 배치하고 철수했으며, 이듬해에 고려인들이 이들을 모두 살해했다는 기사가 있다.
다루가치 살해사건 (達魯花赤 殺害事件)
다루가치 살해사건은 1232년(고종 19) 몽골이 고려에 설치한 다루가치[達魯花赤]를 고려인들이 살해한 사건이다. 다루가치는 몽골의 관직 이름으로서 초기 점령지의 시정관(施政官)으로 창설했다가, 원나라에서는 지방 행정 관청의 감독관으로 배치하였다. 몽골의 기록에 의하면, 1231년(고종 18) 대몽강화(對蒙講和)가 이루어지면서 몽골에서 다루가치를 고려에 배치하고 철수했으며, 이듬해에 고려인들이 이들을 모두 살해했다는 기사가 있다.
고려후기 부방장군, 분도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김중온 (金仲溫)
고려후기 부방장군, 분도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설신은 고려 후기 최씨무신정권에서 상서좌복야, 추밀원부사, 형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순창군 호장의 증손이며, 외가도 순창군 호장이었다. 그는 시부와 관리로서의 재능이 있어 과거를 거쳐 내외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232년(고종 19) 몽골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과중한 공물 징수에 대한 고려의 입장을 전하였으며 그해 재침한 몽골군에게 억류되었다가 처인성 승첩 이후 풀려나기도 하였으며, 1242년(고종 29) 동지공거로서 과거를 주관하였다. 1251년(고종 38)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묘지명이 전하고 있다.
설신 (薛愼)
설신은 고려 후기 최씨무신정권에서 상서좌복야, 추밀원부사, 형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순창군 호장의 증손이며, 외가도 순창군 호장이었다. 그는 시부와 관리로서의 재능이 있어 과거를 거쳐 내외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232년(고종 19) 몽골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과중한 공물 징수에 대한 고려의 입장을 전하였으며 그해 재침한 몽골군에게 억류되었다가 처인성 승첩 이후 풀려나기도 하였으며, 1242년(고종 29) 동지공거로서 과거를 주관하였다. 1251년(고종 38)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묘지명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