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수피아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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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사립 여자고등학교.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光州須皮亞女子高等學校)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사립 여자고등학교.
유진벨재단은 인세반(Stephen W. Linton) 박사가 대북지원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1895년 유진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한국에 파견되어 서울과 목포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1995년 그의 선교사역 100주년을 기념하여 4대손인 인세반 박사가 대북지원 사업을 목적으로 미국에 유진벨재단을 설립하였다. 2000년에 한국에 ‘재단법인 유진벨’ 법인을 등록하고, 북한의 결핵 치료를 위한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유진벨재단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과 민간 교류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유진벨재단 (EugeneBell財團)
유진벨재단은 인세반(Stephen W. Linton) 박사가 대북지원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1895년 유진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한국에 파견되어 서울과 목포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1995년 그의 선교사역 100주년을 기념하여 4대손인 인세반 박사가 대북지원 사업을 목적으로 미국에 유진벨재단을 설립하였다. 2000년에 한국에 ‘재단법인 유진벨’ 법인을 등록하고, 북한의 결핵 치료를 위한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유진벨재단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과 민간 교류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백청단은 1930년대 초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학생 독립운동 단체이다. 1개월에 한 번씩 모여 인문 · 사회 과학에 관한 서적을 선정하고, 각자가 다 읽고 나서 그 결과를 토론하는 형식의 모임을 지속하였다. 1933년 1월에 9명의 학생이 검거되면서 활동이 중단된다.
백청단 (白靑團)
백청단은 1930년대 초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학생 독립운동 단체이다. 1개월에 한 번씩 모여 인문 · 사회 과학에 관한 서적을 선정하고, 각자가 다 읽고 나서 그 결과를 토론하는 형식의 모임을 지속하였다. 1933년 1월에 9명의 학생이 검거되면서 활동이 중단된다.
진신애는 1919년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시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동료 교사인 박애순과 함께 학생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체포되었으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진신애 (陳信愛)
진신애는 1919년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 시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동료 교사인 박애순과 함께 학생을 이끌고 참여하였다.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체포되었으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애순은 1919년 광주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19년 3월 김강으로부터 독립선언문 50여 통을 전달받아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을 설득하여 3월 10일 광주 장날에 20여 명을 데리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며, 조사 후 기소되었다.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박애순 (朴愛順)
박애순은 1919년 광주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19년 3월 김강으로부터 독립선언문 50여 통을 전달받아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을 설득하여 3월 10일 광주 장날에 20여 명을 데리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며, 조사 후 기소되었다.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수향은 1919년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3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광주 수피아여학교 재학 중 광주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수피아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결혼 후 동아일보 광주지국 기자로 활동하였다.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수향 (崔秀香)
최수향은 1919년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3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광주 수피아여학교 재학 중 광주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수피아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결혼 후 동아일보 광주지국 기자로 활동하였다.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