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19년,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주요 활동
3월 10일 오후 최수향은 교사 박애순 및 학생 홍순남(洪順南) 등의 동료와 함께 광주 부동교(不動橋) 밑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들자, 최수향과 동료들은 직접 만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 곳곳을 행진하였다. 1,000여 명에 달한 시위대가 우체국 앞에 이르자, 일본 기마헌병대와 소방대가 강제 해산시켰다.
최수향은 박애순 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체포된 사람들 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조사 과정에서 심한 폭행을 당해 평생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한국여성독립운동가』(3.1여성동지회, 국학자료원, 2018)
- 김진호, 박이준, 박철규, 『국내 3·1운동 Ⅱ: 남부』(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독립운동사 9』(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신문·잡지 기사
- 『매일신보』
기타자료
- 「판결문」(광주지방법원, 1919.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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