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월 27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현숙(崔賢淑)이다. 아버지는 최명환이며, 어머니는 이군분이다.
1919년 광주 수피아여학교(須皮亞女學校)에 재학 중이었다. 교사 박애순(朴愛順)으로부터 민족자결주의와 파리강화회의를 통한 조선 독립의 가능성을 배웠으며, 교사 최병준(崔丙浚)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유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연설을 듣고 3·1운동 참여를 결심하였다.
3월 10일 오후 최수향은 교사 박애순 및 학생 홍순남(洪順南) 등의 동료와 함께 광주 부동교(不動橋) 밑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들자, 최수향과 동료들은 직접 만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내 곳곳을 행진하였다. 1,000여 명에 달한 시위대가 우체국 앞에 이르자, 일본 기마헌병대와 소방대가 강제 해산시켰다.
최수향은 박애순 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체포된 사람들 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조사 과정에서 심한 폭행을 당해 평생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최현숙으로 개명하고 서울로 이사하여 1920년부터 1924년까지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를 다녔다. 졸업 후 광주 수피아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4년 김용환(金容煥)과 결혼한 후에는 동아일보 광주지국에서 기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행적은 파악되지 않으며, 1984년 7월 25일 사망하였다.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