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순은 1919년 천안 양대리장터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 재학 중에 천안 양대리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에는 홍성공립공업전문학교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일으킨 동맹휴학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902년 10월 15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입장면(笠場面) 양대리(良垈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황금순(黃錦順) · 황현숙(黃賢淑)이다.
기독교도로, 1919년 미국 선교사가 설립한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3월 10일 동료 민옥금(閔玉錦), 한이순(韓二順)과 함께 광명학교 교사 임영신(任永信)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부를 전해 받으며 서울의 만세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앞일을 부탁받았다. 이에 학교와 가까운 양대리시장에서 장날이 열리는 3월 20일에 동료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학내에서 학우들을 대상으로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는 한편,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직접 제작하며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20일 항의의 의미를 담아 상복을 입은 채 학교로 갔다. 학생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시위 참여를 호소하여 80여 명의 학우를 모았다. 이후 민옥금, 한이순 등과 함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양대리시장으로 시위대를 이끌고 갔다. 양대리시장에서는 직산금광 광부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가 이미 만세를 외치고 있었으므로, 이들과 합류하여 장터 곳곳에서 만세를 외쳤다. 이후 광명학교 교사 강기형(姜琦衡) 등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시위에 가세하였다. 황금순은 6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이웃 마을 장터로 이동하며 시위를 이어 나가다가, 군경에 붙잡혀 헌병대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보안법 위반 혐의로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 2월에는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홍성공립공업전문학교 학생들이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취지로 동맹휴학을 전개하였는데, 그 배후로 지목당해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1964년 10월 20일 사망하였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