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덕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 교통부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7년경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최신덕이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평양 감리교파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로 조직이 확대되자, 교통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 등을 하다가 조직이 발각되어 1920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병환으로 귀향하였으며, 1926년 사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평양 출신이다. 1920년 당시 23세였다고 하므로, 1897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최신덕(崔信德)이다.
최순덕은 1919년 3·1운동에 영향을 받아 그해 6월 평양에서 박승일(朴昇一)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기독교 감리교파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추진하였다. 11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권유를 수용해 평양의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로 조직이 확대되었다.
대한애국부인회는 평양에 본부를 두고, 지방의 부인회를 지회로 흡수하였다. 산하에는 재무부, 교통부, 적십자부 등의 부서를 두기로 하였다. 최순덕은 이때 교통부장(交通部長)으로 임명되었으며, 11월 말 열린 대한청년단연합회에 대한애국부인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이후 대한애국부인회 회원 100여 명과 함께 서북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군자금 2,000여 원을 모금해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최순덕은 1920년 10월 대한애국부인회 증산지회(甑山支會) 지회장 송성겸(宋聖謙)이 체포된 것을 계기로 조직이 발각되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이후 병을 얻어 귀향하였고, 1926년 8월 25일 평안남도 의주(義州)에서 사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