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의 일원으로 군자금 등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월할 목적으로 평양 지역 감리교 여성 신자들과 함께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해 11월 장로교파 애국부인회와 연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1920년 10월까지 2,400여 원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896년 9월 19일 평안남도 강서군 평남면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승일(朴升日) · 박승일(朴昇壹)이다.
강서 보통학교와 평양 숭의여학교를 거쳐 1915년 서울 이화학당 고등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이후 이화부속학교와 평양여자고등성경학교 등에서 재직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루터교 선교사가 운영하는 도쿄아시아성경학교를 졸업하였고, 귀국 후 평양 남산현교회가 설립한 학교에서 재직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기독교병원 기흘병원(紀笏病院)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1919년 4월 13일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를 지원할 목적으로 그해 6월 초순 평양 관후리(館後里) 황신덕(黃信德)의 집에서 이성실(李誠實), 손정실(孫貞實), 최순덕(崔順德) 등 감리교파 부인들과 과 함께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10여 일 후 평양 남산현교회 유치원에서 다시 모임을 가졌고, 7월 15일에 임원 개선, 회비 금액 개정, 활동 방법 등을 협의하였다.
한편, 이 무렵 평양의 장로교 여신도들도 한영신(韓永信)의 주장에 따라 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임시정부가 국내 비밀 조직을 통합하기 위해 김정목(金貞穆), 김순일金(淳一) 등을 파견한 뒤로, 두 애국부인회의 통합이 추진되었다. 그 결과 11월 두 부인회의 간부 각 6명이 평양 신양리(新陽里) 김경희(金景喜)의 방에 모여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기로 합의하였다. 부인회가 없는 지역은 지회를 두기로 하였으며, 부서는 재무부, 교통부, 적십자부 등을 두었다. 임원은 총재에 오신도(吳信道), 회장에 안정석(安貞錫), 부회장에 한영신, 적십자부장에 홍활란(洪活蘭), 교통부장에 이성실 등을 선임하였다. 이때 박승일은 평양 감리파 지회장으로 선임되었다.
박승일은 기독교병원 등지를 옮겨 다니며 임원 개선과 회원 모집, 회비 징수 등에 관한 협의 등을 주도하고, 조직 확대와 군자금 모금에 진력하였다. 1920년 10월까지 2,400여 원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그러던 중 1920년 10월 증산지회(甑山支會) 지회장 송성겸(宋聖謙)이 군자금을 전달하다가 붙잡히면서 조직이 탄로 났다. 이로 인해 그해 11월 박승일을 포함한 많은 회원이 강서경찰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20년 10월 15일 검찰에 송치되었으며, 12월 평양지방법원 진남포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1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2년 6월 17일 풀려났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