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6월 15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선천면(宣川面) 천북리(川北里)에서 태어났다. 1940년대 초 이원하(李元河, 1921~1980)와 결혼하였다. 박기은 부부가 언제 어떻게 중국에 건너갔는지는 알 수 없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일본군 점령 지역 내에서 지하공작을 펼치던 한국광복군 제3지대의 윤창호(尹昌浩)와 접선하여 그곳을 탈출하였다. 남편 이원하는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허난성[河南省] 구이더[歸德] 지구 전방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 관련 유인물을 배포하였다. 박기은은 1944년부터 일본군에서 탈출한 한국인들을 도와 안전지대로 호송하였다.
1945년 2월 동료 공작원이 체포되자, 피신하여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1945년 3월 광복군 제3지대 본부에서 군사 훈련 및 간호 교육 등을 이수하고 제1구대본부 구호분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6월 당시 제3지대 간부 명단에 ‘구호대장’으로 기록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구이더 지구 특파단 단장 장조민(張朝民) 등과 함께 중국 내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활동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거주하다가 1980년 남편 이원하가 사망하자, 1981년 7월 자녀들이 거주하는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2017년 1월 7일 뉴저지에서 사망하였다.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017년 1월 25일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에 있는 남편 이원하의 묘소에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