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진남포 출신. 만주지역에서 독립군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43년 5월 일본군 점령지에서 탈출하여 부양현(埠陽縣)의 광복군징모 제6분처에 편입되었다. 주임 김학규(金學奎)의 지시로 화중지구특파원이 되어 많은 학병 · 지원병을 탈출시키는 모집활동을 담당하였다.
1944년 김학규가 중국군과 협의, 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 간부훈련단에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약칭 韓光班)을 설치하자, 50여명의 동지와 함께 입대하여 5개월간의 교육훈련과정을 마치고 1기생으로 졸업, 중국군 준위로 임명되었다.
그뒤 김학규의 지시에 따라 쉬저우[徐州] · 톈진[天津]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1945년 3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로 정식 편성되자 화중지역 공작책임자로 임명되어 부하를 인솔하고 쉬저우 · 칭다오[靑島] · 지난[濟南] 등지에 잠입하여 초모공작 · 군자금조달 · 일본군 정보수집공작 · 일본군 군사시설 파괴공작 등을 전개하였다.
특히 3월에는 중국중앙군 유격대와 협의하여 귀덕역(歸德驛) 구내에 정차중인 일본군 탄약수송열차를 폭파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4월에는 미군 · 중국군과 정보수집공작에 참여하였다. 그뒤 제3지대 난징군사특파단 부단장을 지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