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주요 활동
이후 나은주는 금천군 백마면(白馬面) 장지리(長芝里) 장동(長洞)의 집으로 귀향하였다. 고향인 금천군의 만세시위는 4월부터 본격화하였다. 그가 살던 백마면에서는 4월 1일 노형근(盧馨根), 이상로(李祥老) 등의 주도로 80여 명이 용성리(龍城里)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는 일본 헌병 파견대의 저지로 이내 해산되었지만, 다음날인 4월 2일 오후 1시경 다시금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들 시위대가 이웃한 현내면(縣內面) 송정리(松亭里) 방면으로 행진하려 할 때, 나은주가 나서서 70~80명 앞에서 ‘조선 독립’에 관해 연설하였다. 이날 시위 역시 헌병들의 제지로 해산되었으며, 주민 몇 명이 체포되었다.
4월 3일 오후 2시경, 나은주를 포함한 300여 명의 시위대는 현내면 주재소로 가서 전날 체포된 주민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체포된 주민들이 이미 금천면 헌병분견대로 이송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해산하였다. 나은주는 이후 일본 헌병들의 주도자 검거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8월 21일 고등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면서 징역 1년이 확정되었고, 평양 모란봉 여감옥 7호실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1978년 1월 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판결문」(고등법원, 1919. 8. 21.)
단행본
- 『국내 3·1운동 Ⅰ: 중부 북부』(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 『독립운동사 3』(국가보훈처, 1971)
- 이병헌, 『3·1운동비사』(시사시보출판국, 1959)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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