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민옥금은 일제강점기 천안 양대리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사립 광명여학교 재학 중에 임영신, 한이순 등과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후 3월 17일 태극기를 제작하고 3월 20일에 학생 80여 명과 함께 양대리 장터로 나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입장 장터로 향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20년 2월 7일 가출옥하였으며, 이후 호수돈여학교와 감리교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해방 후 조선여자국민당 상무간사를 역임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천안 양대리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주요 활동
3월 20일 오전 10시경, 민옥금은 학생 80여 명과 함께 학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양대리 장터로 나갔다. 그러고는 거기에 모여 있던 30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양대리 장터에서 3㎞ 떨어진 하장리의 입장 장터로 향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참여자가 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때 일본 헌병대가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하려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민옥금은 머리에 둔기를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져 붙잡혔다. 이후 천안군 내 헌병대 유치장에 10일간 구금되었다가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2월 7일 가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판결문」(공주지방법원, 1919. 4. 28.)
단행본
- 『국내 3·1운동 Ⅰ: 중부 북부』(한국독립운동연구소, 2009)
- 『한국민족운동사료: 3.1운동편 (1)』(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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