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순은 1919년 천안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충청남도 천안군에서 태어났다.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13세의 나이로 3·1운동에 참여하였다. 학교 인근의 천안 양대리장터에서 광명학교 학생 8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어 다수의 일반 시민과 함께 이웃 마을 장터로 옮겨가 시위를 지속하다가 군경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906년 11월 14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입장면(笠場面) 양대리(良垈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국강(韓菊江)이다.
1919년 당시 13세로, 미국인 선교사가 설립한 사립 여학교인 광명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민옥금(閔玉錦), 황금순(黃金順) 등과 함께 광명학교 교사 임영신(任永信)으로부터 서울의 3·1운동 소식을 듣고, 독립선언서 1부를 전달받았다. 이를 계기로 3월 20일 학교 인근 양대리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였다. 이후 동료들과 태극기를 직접 제작하는 한편, 교우들과 접촉해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였다.
3월 20일이 되자 항의의 의미로 흰옷을 차려입고, 민옥금, 황금순 등과 학교로 향했다. 광명학교 학생 80여 명을 시위대로 조직하였으며, 이들을 이끌고 양대리장터로 갔다. 행진하는 사이 광명학교 교사 강기형(姜琦衡)과 마을 주민, 직산금광 광부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와 합류하였다. 준비해 온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치다가 이웃 마을 장터로 이동하였다.
양대리장터 인근의 하장리 입장시장에 이르자, 시위대의 규모가 600~700명에 이르렀다. 그러자 시위 진압을 위해 천안헌병분대와 천안철도엄호대 병력이 파견되었고, 한이순은 붙잡혀 헌병대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80년 1월 31일 사망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