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9월 13일 평양 이향리(履鄕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순흥(順興)이고, 이명은 박정석(朴貞錫)이다.
감리교 신도로 평양의 숭의여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 남산현교회에서 전도 활동을 하였다. 1913년에는 숭의여학교 교사 황애덕(黃愛德), 숭현여학교 교사 김경희(金敬喜), 숭의여학교 교사 이효덕(李孝德)과 함께 비밀결사 송죽회(松竹會)를 결성하였다. 안정석은 여학교 출신의 가정부인으로 참여하였다. 송죽회는 중년 여성을 송형제, 젊은 여성을 죽형제라 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을 모집하였다. 회비를 걷고 역사 강좌를 열었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숭의여학교 등의 학생들에게 회합 장소를 제공하고, 독립선언서, 격문, 태극기 제작에 필요한 경비도 조달하였다.
안정석은 대한애국부인회에도 참여하였다. 1919년 6월 장로교와 감리교가 각각 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는데, 11월에 대한애국부인회로 통합되었다. 평양에 본부를 두고 진남포, 증산 등에 지부를 두었으며, 회원은 100명을 상회하였다. 독립운동가이자 목회자인 손정도(孫貞道)의 어머니이며, 61세의 연장자로 신망이 두터웠던 오신도(吳信道)가 총재가 되어 조직의 규합과 확장을 꾀하였다. 안정석은 회장을 맡았다. 대한애국부인회에는 관료의 가족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안정석도 그러하였다. 『매일신보』 1920년 11월 7일 자 기사에 의하면, 안정석은 대동군수의 의매(義妹)였다. 남편 쪽은 친일 세력과 가까웠다고 한다. 대한애국부인회는 회원을 모집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上海]로 보내는 활동을 하였다.
1920년 10월 증산지회 지회장 송성겸(宋聖謙)이 검거되면서 조직이 발각되었고, 안정석도 11월 강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그해 12월 평양지방법원 진남포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으나, 1921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