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제현은 일제강점기 미주 새크라멘토 한인부인회, 대한여자애국단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2년에 태어났으며, 출신지는 미상이다. 대한인국민회 후원과 일화 배척을 목적으로 조직된 새크라멘토 한인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미주 지역 여성 단체들이 연합하여 조직한 대한여자애국단에도 참여하였다. 본부와 샌프란시스코지부에서 회장과 위원을 역임하면서 한인 여성 사회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892년에 태어났으며, 출신지와 본적은 미상이다. 이명은 이제현(李齊賢)이다.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흥사단(興士團)에서 활동한 양주은(梁柱殷)이 남편이다.
20세기 초 미주 한인 여성 사회는 남편과 함께 하와이로 일자리를 찾아온 여성과 ‘사진 혼인’으로 이주한 여성들로 이루어졌다. 3·1운동 이전까지 설립된 한인 여성 조직은 1908년에 샌프란시스코에 설립된 한인부인회, 1914년 새크라멘토(Sacramento)에 설립된 한인부인회, 1917년 로스앤젤레스에 설립된 부인친애회(婦人親愛會), 1917년 맨테카를 중심으로 조직된 부인전도회 등이 있었다. 양제현은 이 중 새크라멘토 한인부인회의 회장으로 활동하였는데, 대한인국민회 후원과 일화(日貨) 배척을 목적으로 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지원을 위해 미주 지역 여성 단체들의 연합이 추진되어, 같은 해 8월 5일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이 조직되었다. 대한여자애국단은 여성의 권리와 의무를 바탕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활동하고자 하였으며,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멕시코와 쿠바까지 조직을 확대하였다. 교포 사회를 결속하고 계몽하는 활동을 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의연금을 모금하여 중국군을 지원하였고, 태평양전쟁 때에도 후방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양제현은 본부와 샌프란시스코지부에서 회장과 위원을 역임하면서 미주 한인 여성 사회의 지도자급 인사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59년 6월 15일 사망하였다.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