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순은 일제강점기에 여성 교육에 힘쓰고 독립운동을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이동휘의 큰딸로, 1893년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집안의 일원으로 가족들과 함께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할아버지 이발, 아버지 이동휘, 남편 정창빈, 동생 이의순, 동생의 남편 오영선도 모두 독립운동가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기독교계 여학교에서 근대 교육을 받았고, 이후 함흥, 성진, 북간도 등지에서 여성 교육에 힘썼다. 1919년 블리다보스톡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893년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독립운동가 이동휘(李東輝, 1873~1935)의 큰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이발(李撥), 동생 이의순(李義橓), 동생의 남편인 오영선(吳永善)도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남편은 1907년 신민회에 가입하여 이동휘의 휘하에서 활동한 함경도 출신 정창빈(鄭昌贇, ?~1920)이다.
1903년 아버지 이동휘가 경기도 강화진위대장으로 부임하면서 어머니 강정혜, 동생 이의순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였다. 이인순은 민족 교육을 위해 구한말에 학교설립운동을 주도한 이동휘의 영향으로 신식 교육을 받았다. 이동휘가 1904년 강화읍에 설립한 보창학교의 부설 여학과에 다녔다. 보창학교 졸업 후에는 서울 연지동에 있는 정신여학교에서 중등 여학교 과정을 마쳤다. 정신여학교는 1887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가 엘러스(A. J. Ellers)가 설립한 여성 교육기관이다.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17세부터 함흥, 성진, 북간도 등지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여성 교육에 힘썼다. 1912년 이동휘가 북간도 국자가(局子街)로 망명할 때 함께 하였다. 이인순은 북간도에서 조선여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18년 가을, 이동휘의 지시로 가족들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新韓村)에 정착하였다. 남편 정창빈과 함께 이동휘를 돕기 위해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1919년 11월에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5세의 어린 아들 정광우도 머지않아 어머니를 따랐다. 1920년 1월 17일 오후 2시 상하이[上海] 대한애국부인회 주최로 이인순을 비롯하여 하란사(河蘭史), 김경희(金敬喜) 등의 추도회가 개최되었는데, 안창호, 김립(金立) 등 상하이의 유지 30여 명이 참석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