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진남포부에서 태어났다. 1921년 당시 53세였다고 하므로, 1869년생으로 추정된다.
감리파의 속장으로 사역하였다. 속장이란 감리교의 구역별 모임인 속회를 맡아 인도하는 교직을 말한다. 1920년 5월 평양 대한애국부인회의 일원으로 진남포지회를 조직하고 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대한애국부인회는 1919년 11월경 평양 지역의 여성 기독교 신자들이 모여 결성하였다. 처음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각각 조직을 결성하였지만, 통합하여 연합회 본부와 지부를 둔 대한애국부인회로 확대되었다. 독립운동가이자 목회자인 손정도(孫貞道)의 어머니이며, 61세의 연장자로 신망이 두터웠던 오신도(吳信道)가 총재가 되어 조직의 규합과 확장을 꾀하였다. 대한애국부인회는 회원을 모집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선전하였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上海]로 보냈다.
안애자가 소속된 진남포지회에서도 자금을 모아 본부에 전달하였다. 진남포지회의 회원은 25명이었는데, 회장 안애자 외에 부회장 최매지(崔梅智), 재무 이선순(李善順), 모집원 양진실(梁眞實), 지회원 오유덕(吳有德), 박복녀(朴卜女) 등이 있었다.
대한애국부인회는 1920년 10월 증산지회 지회장 송성겸(宋聖謙)이 검거되면서 발각되었다. 안애자는 징역 2년 6개월 형을 받고 평양감옥에 수감되어 고초를 겪다가 1922년 5월 25일 가석방되었다. 출옥 후인 1923년에 진남포부에서 결성된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진남포지방부에 임원으로 참여하였고, 1924년에는 진남포부 소재 비석유치원 설립에 참여하였다. 이어 1929년에는 근우회 진남포지회 위원 및 신간회 진남포지회 후보위원으로 참여하였다.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