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최매지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 YMCA 할머니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에 대한애국부인회 활동으로 투옥된 바 있으며, 이후 진남포아동협회를 조직하여 아동 교육과 여성 계몽운동을 펼쳤다. 해방 후 대한애국부인회 안동군지부장을 맡았고 제헌국회의원에 출마하였다. 한국전쟁 후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와 YWCA에서 요보호여성 구제활동, 절제운동, 봉사활동을 계속하였다. 또한 평생 치과의사라는 전문성을 봉사활동에 활용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 해방 후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 YMCA 할머니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개설
인적사항
주요 활동
1938년 결혼 후 안동에 정착한 최매지는 삼일치과를 운영하면서 해방 후 대한애국부인회 안동군지부장, 독립촉성국민회 부녀부장을 맡아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년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 민선의원 대의원 선거에서 안동군 대표로 당선되었고,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여성 계몽운동에 주력하기로 마음먹고 한국전쟁 이후 여성 구제 활동에 집중하였다. 부산 피난 시절에는 초량에 치과의원을 열어 진료하는 한편, '전쟁미망인회'를 조직하여 기술 교육과 직업 알선을 도모하였다. 서울로 돌아와 삼일치과를 개원하여 빈민 치료에 나서는 가운데, 1953년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연합회 이사 및 서울지역 회장을 맡아 여성 구제 및 봉사 활동에 노력하였다. 1960년에는 종교교회 장로와 여선교회 회장을 맡아 봉사하였고, 1967년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황신덕, 박현숙, 이신애 등 20여 명과 3·1여성동지회 창립에 함께하였다. 또한 YWCA 할머니회 초대회장, 인덕실업학교 이사를 맡아 후진 양성과 봉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윤정란, 『한국 기독교 여성운동의 역사』 (국학자료원, 2003)
- 이화100년사편찬위원회, 『이화100년사』 (이화여자대학교, 1994)
- 3·1여성동지회 문화부 편, 『한국여성독립운동사: 3·1운동 60주년 기념』 (3·1여성동지회, 1980)
논문
- 윤은순, 「최매지의 민족운동과 사회활동」 (『여성과역사』 30, 한국여성사학회, 201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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