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을 배경으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기독교 계통의 교육기관·사회사업기관·여성기관 등에 참여하여 한국 교회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896년 인천에서 출생했다. 인천 영화여학교와 진남포 삼숭여학교에서 공부하고, 1914년 이화학당 중등과를 졸업했다. 진남포 삼숭여학교 교사로 재직 중 ‘대한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서기 겸 진남포 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내는 일을 하다 1920년 진남포 신흥리교회에서 체포되었다. 평양복심법원에서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22년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28년 도쿄 여자치과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30년 평양에 조선치과의원을 개원하였다. 1936년에 혼인하였으나, 1945년 남편과 사별하였다. 해방 후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였으며 1960년 종교교회 장로로 선임되었다. 1983년에 별세하였다.
일제하 평양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면서 주민들을 위한 무료진료 활동을 하는 한편 지역사회 부녀 계몽 및 구강위생 사업 등을 전개하였다. 동시에 진남포 여성동우회 회장(1931년), 진남포 엡웻청년회 회장(1932년), 진남포 삼숭학교 동창회장 및 삼숭유치원 원장(1935년) 등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에는 경상북도 안동읍 부인회 회장을 비롯하여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1948년),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부인회 총본부 이사, 전재(戰災)부인회 상조회 부회장(1951년), 기독교여자절제회 서울시 회장(1956년), 종교교회 여선교회장(1965년), 인덕실업학교 이사, YMCA 할머니회 초대회장(1972년)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이화여대에서 ‘의료사업 헌신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1973년에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제정한 ‘용신봉사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977년에는 건국공로 표창을 수여받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