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평양 출신. 아버지는 박정규(朴貞圭), 어머니는 최광명(崔光明)이며, 남편은 독립운동가 김성업이다.
1913년 평양 숭의여학교(崇義女學校)를 졸업한 뒤 전주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교사로 근무하면서 1915년 항일비밀결사인 송죽결사대를 조직,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복역 중 신병으로 출옥하자 다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부인회의 결성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으나, 이듬해 일본경찰에 잡혀 징역 2년6월이 언도되었다. 1922년 가출옥하였다. 1927년 협동전선의 하나로 여성단체인 근우회(槿友會)가 결성되자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에는 여자국민당 총무부장을, 1952년에는 무임소장관과 MRA대회 한국대표를 맡았다. 1953년 대한부인회 최고위원을 역임하고 숭의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여성운동과 교육사업에 종사하였다. 1953년 자유당 소속 민의원, 1963년 공화당 전국구의원이 되었다.
그 뒤에도 공화당 중앙위원회 부의장, 3·1여성동지회 회장, 전국여성단체 최고위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을,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