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애국부인회와 근우회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대한부인회 최고위원,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80년
  • 성별여성
  • 출생 연도1896년(고종 33)
  • 출생지평안남도 평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재홍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대한애국부인회와 근우회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대한부인회 최고위원,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개설

평안남도 평양 출신. 아버지는 박정규(朴貞圭), 어머니는 최광명(崔光明)이며, 남편은 독립운동가 김성업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3년 평양 숭의여학교(崇義女學校)를 졸업한 뒤 전주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교사로 근무하면서 1915년 항일비밀결사인 송죽결사대를 조직,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복역 중 신병으로 출옥하자 다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부인회의 결성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으나, 이듬해 일본경찰에 잡혀 징역 2년6월이 언도되었다. 1922년 가출옥하였다. 1927년 협동전선의 하나로 여성단체인 근우회(槿友會)가 결성되자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에는 여자국민당 총무부장을, 1952년에는 무임소장관과 MRA대회 한국대표를 맡았다. 1953년 대한부인회 최고위원을 역임하고 숭의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여성운동과 교육사업에 종사하였다. 1953년 자유당 소속 민의원, 1963년 공화당 전국구의원이 되었다.

그 뒤에도 공화당 중앙위원회 부의장, 3·1여성동지회 회장, 전국여성단체 최고위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을,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역대국회의원총람』(황석준 편, 을지사, 1982)

  • - 『한국여성독립운동사』(3·1여성동지회, 1980)

  • - 『독립운동사』 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 - 『한국독립운동사』 3(국사편찬위원회,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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