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협의회 ()

사회구조
단체
1959년 12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양성이 평등하게 참여할 권리와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고 국가 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결성된 비정치적 민간 여성 단체의 협의체.
이칭
약칭
여협
단체
설립 시기
1959년
내용 요약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1959년 12월 26일 결성된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여성 운동 단체이다. 권위주의적인 군부 정권 하에서는 정권과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온건적인 성향을 보였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때로는 진보 진영 여성 단체들과 협력하기도 했다. 세계여성단체협의회 회원 단체로서 다양한 국제 활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권익의 향상을 위해 오늘날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으며 평화, 생협, 환경 등 다양한 민주주의 의제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정의
1959년 12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양성이 평등하게 참여할 권리와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고 국가 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하여 결성된 비정치적 민간 여성 단체의 협의체.
연원과 조직형성

여성의 권익 신장을 도모해 온 한국의 여성운동은 19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갖는다. 일제강점기부터 민족주의 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라는 좌우 양 진영 모두에서 활성화되었으며, 1927년 결성되었던 근우회, 1945년 해방 직후 결성되었던 건국부녀동맹 등과 같이 좌우 합작의 전통도 존재한다. 그러나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을 경유하며 좌파 여성 운동은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고 우파 여성 운동만이 미군정, 이승만 정권과의 협조 속에 살아남았다. 1959년 12월 26일 결성된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는 한국의 우파 여성 운동의 명맥을 잇는 대표적인 보수적 여성 운동 단체이다. 대한여학사협회, 대한YWCA연합회, 여성문제연구회, 부녀보호사업연합회, 학생문제상담소, 대한어머니회, 대한부인회총본부, 한양여성클럽 등 8개 단체의 협의체로 출범하였고, 이후 단체들의 가입과 탈퇴가 이어졌지만 2022년 7월 현재 61개 회원 단체와 500만여 명의 회원을 둔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김활란, 박마리아, 모윤숙, 황신덕, 최이순, 고황경, 이태영, 황윤석 등 널리 알려진 명망가 여성들이 여협에서 활동했다.

주요 활동

여협은 비정치적, 초종교적 성격의 순수 여성 운동을 표방해 왔다. 그러나 초기 여협의 성장에는 군부 권위주의 정권과의 긴밀한 협조가 밑바탕을 이루었다. 여협은 1962년 이래로 전국여성대회를 개최해 옴으로써 명실공히 전국 보수적 여성 단체의 구심점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이 대회는 정부 부처인 보건사회부의 부녀국 행사로 출발한 것을 여협이 이관받은 것이었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했을 때나 1987년 4월 13일 호헌 조치가 발표되었을 때 등 민주주의의 후퇴가 발생할 때마다 여협은 지지 성명을 통해 정권의 편에 섰다. 여협은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활동 역시 전개했지만 대체로 정부에 협조적인 기조를 벗어나지 않는 온건한 수준에 머물렀다. 여협은 4·19 직후인 1960년 7 · 29 선거를 앞두고 결성된 여성단체임시연합회에 참여하여 당시 여성계의 당면 과제였던 축첩 주1 폐지 운동에 함께 했다. 주2 개정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1973년 61개 여성 단체와 연합하여 범여성 가족법 개정 촉진회를 결성하였고, 1984년 가족법 개정을 위한 전국여성연합회 참여를 통해 1989년 가족법의 개정을 이끌어 내는데 기여했다. 여성 노동자 처우 개선 문제에도 부분적으로 관여하였다. 1960~70년대에는 가끔 여성 노동자 처우 개선 좌담회 정도를 개최하는 등 다소 소극적이었다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보다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대표적으로 1983년 발생한 한국전기통신공사 교환원 김영희가 남여 차별적인 정년제에 항의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적극 관여하고 지원한 바 있다. 1986년 8월 20일에는 ‘근로 여성 고발 창구’를 개설하였고, 1987년 10월에는 ‘근로 여성 의식 및 실태 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정부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만큼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해서 때로는 진보 진영의 여성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던 1988년에는 ‘여성의 정치 진출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였고, 1994년 지방 자치 선거를 앞두고 진보 진영의 여성 단체들과 함께 ‘할당제를 위한 여성 연대’를 결성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진보 및 보수 여성 단체와 범시민단체들이 함께 한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 연대’에 참여하여 2005년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냈다. 그 밖에도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소비자보호운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1984년부터는 매스컴 모니터링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 사업, 저출산 극복 사업, 다문화 가정 지원 사업, 이주 여성 대상 사업 등 환경 혹은 다문화 영역으로도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국제교류사업

여협은 출범 시점부터 국제 교류 활동을 중시했다. 세계여성단체협의회(이하 세계여협)의 조직도와 정관을 참고하여 여협이 만들어졌고 창립총회를 마친 1960년에는 세계여협에 가입했다. 1964년 9월 기관지 『여성』을 창간하였으며, 1976년부터는 영문 여성지 『The Korean Women』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1975년 멕시코에서 개최된 세계 여성 대회에 참여하였으며, 1976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제 여성 대회를, 1982년과 2012년에는 세계여협 세계 대회를 서울에 유치하는 등 활발하고 지속적인 국제 활동을 펼쳐 오고 있다. 여협은 세계여협 이사국으로서 활발한 국제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국내 여성 단체로는 처음으로 UN 경제 사회 이사회의 특별 자문 기구 지위를 갖게 되었으며, 매년 개최되는 UN 여성지위위원회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비정부기구로서 참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여성단체협의회,『한국여성단체협의회 30년사』(1993)

논문

김영선, 「1960~70년대 여성운동의 국제화와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활동」(『현상과인식』, 한국인문사회과학회, 2012)
장미현, 「‘일할 권리를 청구합니다’: 1980년대 전반기 고용차별 비판과 여성들의 실천」(『사학연구』 138, 한국사학회, 2020)
정현백, 「한국의 여성운동 60년: 분단과 근대성 사이에서」(『여성과 역사』 4, 한국여성사학회, 2006)
황정미, 「개발국가의 여성정책에 관한 연구: 1960~70년대 한국 부녀행정을 중심으로」(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인터넷 자료

한국여성단체협의회(http://www.kncw.or.kr)
주석
주1

국가나 사회에서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 우리말샘

주2

가족의 생활 관계를 규정한 법. 민법의 친족법과 상속법을 이른다. 우리말샘

집필자
최종숙(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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