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평안남도 진남포부 신흥리(新興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6월 하순경 평양에서 장로교계 여성 신도로 구성된 애국부인회와 감리교계 애국부인회가 결성되었다. 양진실은 1919년 10월 초순 안애자(安愛慈), 최매지(崔梅智) 등과 함께 감리파 애국부인회의 진남포지회를 조직하였다. 회원을 모집하고 회비를 걷어 그 중 약 90원을 평양의 감리교계 애국부인회에 보냈다.
1919년 8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김정목(金貞穆), 김순일(金淳一), 김경희(金敬喜) 등의 통신원을 통해 두 애국부인회를 통합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에 1919년 11월 초순, 장로교와 감리교 애국부인회에서 각각 6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 평양부, 진남포부, 강서군, 함종면, 증산면, 순천군 등에 8개 지회가 설치되었으며, 본부는 평양에 두었다.
양진실은 대한애국부인회 진남포 감리교계 지회의 모집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애국부인회 안에서 진남포 감리교계 지회가 회원 21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한애국부인회로 통합한 뒤에도 지회장 안애자와 부회장 최매지가 중심이 되어 회원을 열심히 모집한 결과였다.
각 지회에서 회원을 모집하고 거둔 회비는 평양의 본부로 보내졌고, 총재 혹은 회장이 임시정부 요원에게 전달하였다. 1920년 5월 초까지 2,400여 원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1920년 10월경 증산지회 지회장 송성겸(宋聖謙)이 회비를 운반하다가 체포되어 대한애국부인회의 존재가 발각되었다. 양진실도 1920년 11월 강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15일 평양지방법원 진남포지청에서 제령 제7호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공소하였으나, 1921년 2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2년 5월 25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