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겸양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활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숭의여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6월 한영신 등과 장로교계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11월 감리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가 출범하자, 서기를 맡아 활동하였다. 1919년 말 목포 정명여학교 교사로 부임하였으며, 재직 중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탁아소 설립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사회사업을 하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895년 10월 24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의 숭의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6월 한영신(韓永信), 김용복(金用福), 김경선(金景善), 김보원(金寶源) 등과 장로교계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같은 해 11월 감리교파 애국부인회와 통합하여 대한애국부인회로 확대되었고, 각파의 부인회는 지부로 하였다. 지회는 평양 감리파 지회, 평양 장로파 지회, 진남포 감리파 지회, 진남포 장로파 지회, 강서군 감리파 지회, 함종 감리파 지회, 순천 장로파 지회가 있었고, 회원은 100명을 상회하였다.
이겸양은 대한애국부인회 본부 서기와 평양 장로파 지회의 서기로 활동하였다. 평양 장로파 지회의 지회장은 김용복, 부회장은 황복리(黃福利)였다. 이들은 회원을 모집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선전하였으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상하이[上海]로 보냈다.
1919년 말 목포의 장로교계 중등 여학교인 정명여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목포에 내려가서도 애국부인회를 이끌었으며, 1920년 4월에는 정명여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지원한 일로 경찰에 검거되었다. 조사 중 애국부인회 관련 사실이 밝혀져, 1921년 2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사회사업에도 참여하여, 숭의여학교 동창회 주도로 평양의 신양리에 설치한 탁아소 설치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