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95년
사망 연도
1968년
출생지
평양
주요 경력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직원, 한국혁명여성동맹 감찰위원, 한국애국부인회 간부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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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최형록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1910년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박은식 등이 설립한 상하이 박달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독립운동가 조소앙과 결혼하여 딸 조계림을 낳았다. 1940년 충칭의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감찰위원으로 참여하였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원으로 임명되어 딸 조계림과 함께 활약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1895년 2월 20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1918년 독립운동가 조소앙(趙素昻)과 결혼하여 딸 조계림(趙桂林)을 낳았다.

주요 활동

1910년 중국으로 이주하였고, 1914년 박은식(朴殷植) 등이 설립한 상하이[上海] 박달학원(博達學院)에 입학해 수학하였다.

1931년 9월 상해한교전체대회(上海韓僑全體大會)에서 일본의 만주 침략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였다. 1938년 4월 24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여당인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의 기관지 『한청(韓靑)』 제3권 제4기에 실은 「여성들아 맹성하여 날라가자!」라는 글에서 중국 내 한인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를 호소하였다.

1940년 충칭[重慶]에서 결성된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산하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에 감찰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43년 충칭에서 한국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조소앙의 여동생 조용제(趙鏞濟)와 함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4년 12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원으로 임명되어 딸 조계림과 함께 활약하였다. 이후 행적은 파악되지 않으며, 1968년 2월 1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단행본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13』(국사편찬위원회, 1978)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1974)
『자료 한국독립운동 1』(연세대학교출판부, 1971)
문일민,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양소전 외, 『관내지구 조선인 반일독립운동자료휘편 상』(요녕민족출판사, 1987)

논문

이준식,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여성독립운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 61,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9)
김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여성들의 독립운동: 1932~1945」(『역사와 경계』 68, 부산경남사학회, 2008)
이배용, 「중국 상해 대한애국부인회와 여성독립운동」(『이화사학연구』 30, 이화사학연구소, 2003)

신문·잡지 기사

『신한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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