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가 조직되면서 오희옥, 오희영 등과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는 중일전쟁 직후인 1937년 8월 중국 류저우[柳州]에서 결성된 단체로, 한국 독립을 위한 민족주의 진영 청년들의 군사 조직이다. 이 단체는 주로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선전 활동을 펼쳤는데, 중국인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고 제국 일본에 단일 대오로 공동 투쟁하기 위해서였다.
중앙정치학교에서 한국인 입교 추천을 하였을 때, 김붕준의 딸 김정숙과 함께 임시정부의 추천을 받기도 하였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1943년에는 임시정부 외무부 과원으로서 안우생, 두군혜 등과 활동하였다. 당시 외무부 총무과장은 이정호, 외무부 외사과장은 안원생이었다.
1943년 6월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의 전면에서 활동하였다. 1939년 5월 9일,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3개 정당 조직이 취소되었으며, 새롭게 통일 정당인 한국독립당이 중국 치장[綦江]에서 창당되었다. 이 단체는 한중연합전선을 구축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국독립당은 중앙조직부 산하 총 5개 구(區) 조직을 설치하였다. 조계림은 한국독립당에 참여하여 해방 때까지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