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연극, 노래, 무용 공연 등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한중연대의 필요성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다. 그 외, 한국광복군 대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어무현[額穆縣]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원삼면(遠三面) 죽릉리(竹陵里) 어현동(於峴洞)이다. 할아버지는 1905년 전후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오인수(吳寅秀)이다. 아버지는 신흥무관학교 교관, 서로군정서 경비대장, 한국독립당 의용군 중대장 등을 지낸 오광선(吳光鮮)이며, 어머니는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당원으로 활동한 정현숙(鄭賢淑)이다. 언니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대원으로 활동한 오희영(吳姬英)이다. 본인 회고에 따르면 본래 1927년에 태어났는데, 아버지 오광선의 착오로 1926년생으로 출생신고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지린성 류허현[柳河縣] 등지에서 생활하였다. 이후 1931년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하자, 가족과 함께 베이징[北京], 난징[南京] 등으로 거처를 옮겼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와 함께 충칭[重慶]으로 향하였다. 그 와중에 만주에서 독립군 기지를 재건하라는 김구의 지시를 받고 1936년에 베이징으로 파견을 떠난 오광선이 일본군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39년 2월 류저우[柳州]에서 독립운동가 자제를 비롯한 10대~30대 청장년층으로 구성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주로 연극, 노래, 무용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일본인의 만행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다. 특히 ‘한중연합군의 연대투쟁’을 주제로 한 연극 「국경의 밤」은 중국인 관객에게 진정한 한중연대를 공감하고 체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후 한국광복군 대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어머니 정현숙(鄭賢淑), 언니 오희영과 함께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