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2월 류저우[柳州]에서 고운기(高雲起)를 대장으로 하여 설립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오희영 · 오희옥 자매, 지복영 등의 독립운동가 자제들로 구성되었는데, 그들과 함께 연극, 노래, 무용 공연을 하며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았다. 또한 중국인들에게 일본인의 만행을 알리고 한중합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활동도 하였다.
1940년 6월 방순희(方順熙)와 김효숙(金孝淑)을 회장 및 부회장으로 하는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이 창립되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1년에는 임시정부 요인 및 한인 교포의 자제를 위해 설립된 3.1유치원에서 연미당(延薇堂), 강영파(姜暎波), 정정화(鄭靖和)와 함께 교사로 활동하였다. 1943년 5월 임시정부에서 중국 내 한인 동포의 생활과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설치한 생계부(生計部)의 생계위원(生計委員)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남편 민영구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총무처장을 맡아 교포 송환 문제 등 행정 업무를 수행해야 했기에 바로 귀국하지 못하였다. 이후 1947년 11월에 민영구의 업무가 마무리되자 함께 귀국하였다. 1956년 사망하였으며, 1976년 민영구가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제1묘역에 안장될 때 합장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