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오희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중국인들에게 일본의 침략상을 알렸다. 이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간부로 푸양에서 초모활동을 비롯한 각종 공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신송식과 함께 푸양의 한국광복군훈련반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졸업생 50여 명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으로 인솔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주요 활동
이후 충칭에 정착해서 중산중학교(中山中學校)를 다니던 중에 1940년 9월 창설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간부로 활동하였다. 오희옥의 회고에 따르면, 중국인 교사의 한국인 차별 발언에 격분하여 학교를 그만두고 입대하였다고 한다. 입대 직후 1937년 베이징에서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치른 오광선을 찾겠다는 목적으로 초모작전에 지원하였다. 1942년 4월 광복군 제3지대에 편성되었으며, 지대장 김학규(金學奎)의 인솔하에 이복원(李復源), 서파(徐波), 엄홍섭(嚴弘燮), 박영준(朴英俊), 오광심(吳光心), 신송식(申松植) 등과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에서 초모활동을 비롯한 각종 공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신송식과 함께 푸양의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졸업생 50여 명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으로 인솔하였다. 졸업생 중에는 일본군에게 강제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한 장준하, 김준엽을 비롯한 33명의 학도병 출신이 포함되어 있었다. 1945년 1월 이들을 인솔하여 충칭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69년 사망하였으며, 1974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이지원, 김승은, 문미라, 한승훈, 『국외한인사회와 여성독립운동가』(선인, 2022)
- 심철기, 이지원, 김정인, 한승훈, 『항일무장투쟁과 여성독립운동가』(역사공간, 2020)
- 박숙현,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의 마지막 증언』(북앤스토리, 2019)
- 지복영, 『민들레의 비상』(민족문제연구소, 2015)
- 김광재, 『한국광복군』(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한시준, 『한국광복군연구』(일조각, 1993)
- 『독립운동사 6: 독립군전투사(하)』(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1975)
- 『독립운동사 4: 임시정부사』(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1972)
논문
- 오은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의 결성과 항일공연예술 활동」(『한국근현대사연구』 87, 한국근현대사학회, 2018)
- 김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여성들의 독립운동: 1932∼1945」(『역사와경계』 68, 부산경남사학회, 2008)
- 윤정란, 「일제 말기 한국광복군 여성대원들의 활동 양상」(『여성학논집』 23-1,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2006)
신문·잡지 기사
- 「치료비없어 사경에…여자 항일독립투사」(『조선일보』, 1968. 5. 19.)
기타자료
- 「독립운동가 오희옥 구술역사자료」(독립기념관)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https://search.i815.or.kr/dictionary/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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