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정정산(鄭正山)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00년
사망 연도
1992년
출생지
경기도 용인군[지금의 용인시]
주요 경력
한국독립당 당원, 한국혁명여성동맹 맹원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정현숙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동향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광선과 결혼하였고, 1918년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청산리전투 이후 1920년대에 각종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만주국 성립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5년에 남편과 난징으로 이동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고, 1940년에는 한국혁명여성동맹 결성에 가담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경기도 용인군[지금의 용인시] 출신이며, 1900년 3월 13일에 태어났다. 이명은 정정산(鄭正山)이다. 1913년 동향 출신 독립운동가 오광선(吳光鮮)과 결혼하였다. 슬하에 오희영(吳姬英), 오희옥(吳姬玉), 오영걸(吳永傑)을 두었다.

주요 활동

1918년경 남편 오광선을 따라 만주로 망명한 후 독립군의 뒷바라지와 비밀 연락 임무를 수행하였다. 오광선은 1918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 별동대장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이후 1920년대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만주국 성립 이후 일제의 탄압 강도가 심해지자, 1933년경 남편과 함께 베이징[北京]으로 이동하였다. 베이징에서 1년, 톈진[天津]에서 2년여간 생활하다가, 1935년경 남편과 함께 난징[南京]으로 이동하였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9년 5월 9일,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3개 정당 조직이 취소되었으며, 새롭게 통일 정당인 한국독립당이 중국 치장[綦江]에서 창당되었다. 이 단체는 한중연합전선을 구축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국독립당은 중앙조직부 산하 총 5개 구(區) 조직을 설치하였다. 정현숙은 이때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또한 1940년 6월 17일에는 충칭[重慶]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 창립에 가담하였다. 선언문과 강령의 내용은 '한국 여성은 혁명 여성임을 자처하며 조국 독립 완성과 세계 평화 실현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중국 여성과 전 세계 피압박민족 여성들과 연계 분투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방순희가 회장, 오광심이 재무, 김효숙이 훈련, 김정숙이 선전, 정정화가 조직부장을 담당하였다.

남편 오광선이 1936년 이후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 남편 오광선과 따로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원전

『용의조선인명부(容疑朝鮮人名簿)』

단행본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독립문화사, 1966)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주용(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