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동향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광선과 결혼하였고, 1918년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청산리전투 이후 1920년대에 각종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만주국 성립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5년에 남편과 난징으로 이동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고, 1940년에는 한국혁명여성동맹 결성에 가담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918년경 남편 오광선을 따라 만주로 망명한 후 독립군의 뒷바라지와 비밀 연락 임무를 수행하였다. 오광선은 1918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 별동대장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이후 1920년대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만주국 성립 이후 일제의 탄압 강도가 심해지자, 1933년경 남편과 함께 베이징[北京]으로 이동하였다. 베이징에서 1년, 톈진[天津]에서 2년여간 생활하다가, 1935년경 남편과 함께 난징[南京]으로 이동하였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9년 5월 9일,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3개 정당 조직이 취소되었으며, 새롭게 통일 정당인 한국독립당이 중국 치장[綦江]에서 창당되었다. 이 단체는 한중연합전선을 구축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국독립당은 중앙조직부 산하 총 5개 구(區) 조직을 설치하였다. 정현숙은 이때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또한 1940년 6월 17일에는 충칭[重慶]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 창립에 가담하였다. 선언문과 강령의 내용은 '한국 여성은 혁명 여성임을 자처하며 조국 독립 완성과 세계 평화 실현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중국 여성과 전 세계 피압박민족 여성들과 연계 분투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방순희가 회장, 오광심이 재무, 김효숙이 훈련, 김정숙이 선전, 정정화가 조직부장을 담당하였다.
남편 오광선이 1936년 이후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 남편 오광선과 따로 귀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