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옥순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으며, 1942년 3월 이후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 4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미국의 합작 훈련이자 한반도 침투 작전이었던 독수리작전에 참가하여 각종 군사 훈련을 받았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여 훈련 성과는 실현되지 못하였고, 1946년 4월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백옥순의 이러한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1913년 7월 30일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고향인 정주에서 1925년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하지만 일제 통치하에서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가족이 만주로 이주하였고, 동향 출신이자 한국광복군 제2지대 대원인 김해성(金海星)과 결혼하였다. 1940년 9월 설립된 한국광복군은 그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중국 군사위원회의 통제가 심해서 소기의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1942년 4월 1일부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 중국 군사위원회 소속 중국군 장교들이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9개준승’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9개준승’ 제5조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소재지는 군사위원회에서 정한다”라고 하는 규정에 따라 충칭[重慶]으로 총사령부를 이전한 광복군은 중국 군사위원회에 예속이 불가피하였다. 이를 반영하듯 총사령부에는 중국군 장교들이 한국군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백옥순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던 1942년 3월 중국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에 체류하다가 한국광복군 초모대원을 만나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서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 입대하였다. 1942년 5월 제5지대가 제2지대로 통합되면서 제2지대 제2구대 3분대원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적 후방으로 파견되어 지하 연락망을 구축하고 심리전, 대적 선전을 펼쳤다. 대원을 모집하고 일본군 내 한인 사병을 광복군에 편입시키는 임무도 수행하였다. 1945년 4월에는 한미 연합 독수리작전에 참가하여 한국광복군 제2지대 훈련처인 시안 근교 두취[杜曲]에서 약 3개월간 적지 잠입, 유격, 폭파 훈련과 암호 통신 교육을 이수하고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하였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군을 지원하여 일본군의 무장 해제, 치안 유지, 한인들의 신변 보호와 안전 귀국 업무를 담당하였다. 1946년 4월 가족과 귀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