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제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국독립당,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의 일원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조경순(趙慶順)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98년
사망 연도
1948년
본관
함안(咸安)
출생지
경기도 양주군(현 양주시)
주요 경력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 요원, 한국독립당 창립 위원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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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조용제는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국독립당,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의 일원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여동생으로, 1929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한국독립당 재건 때 조소앙을 지원하였으며, 충칭 강북구당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하였고, 1943년에는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위원으로 선임되어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에 힘썼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국독립당,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의 일원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경기도 양주군 출신으로, 1898년 9월 14일에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조소앙(趙素昻)의 여동생이다. 이명은 조경순(趙慶順)이다.

주요 활동

1929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으며, 오빠인 조소앙과 조시원(趙時元)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1935년 9월 조소앙이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재건할 때 동참하여 창당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9년 5월 9일,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3개 정당 조직이 취소되었으며, 새롭게 통일 정당인 한국독립당이 중국 치장[綦江]에서 창당되었다. 이 단체는 한중연합전선을 구축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한국독립당은 중앙조직부 산하 총 5개 구(區) 조직을 설치하였다. 조용제는 충칭[重慶] 강북구당(江北區黨)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6월 17일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 창립에 참여하였다. 선언문과 강령의 내용은 '한국 여성은 혁명 여성임을 자처하며 조국 독립 완성과 세계 평화 실현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중국 여성과 전 세계 피압박민족 여성들과 연계 분투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방순희가 회장, 오광심이 재무, 김효숙이 훈련, 김정숙이 선전, 정정화가 조직부장을 담당하였다. 조용제는 창립 요원으로 참여하여 한국 여성에게 민족 혁명 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1943년 충칭에서 한국애국부인회(韓國愛國婦人會)가 재건될 때 위원으로 참여하였고, 광복 때까지 부녀자들의 각성과 단결을 촉구하며 여성 독립운동을 지도하였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단행본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국사편찬위원회, 1969)
집필자
김주용(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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