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출신으로, 1922년 10월 11일 태어났다. 남편은 평양 출신의 이일범(李一凡)으로, 중국 난징[南京]의 중앙대학(中央大學)에 재학하면서 한족동맹운동을 벌이다 한국광복군에 입대한 인물이다.
정영은 1940년 9월 17일 성립한 한국광복군의 제3징모처(第三徵募處)에서 활동하였다. 적 후방에서 지하공작을 펼쳤는데, 주로 일본군 학병에서 탈출한 한인 청년들을 한국광복군에 가입시키는 업무를 맡았다. 한국광복군은 군대 설립 당시 인적 자원 확보가 가장 큰 과제였던 만큼, 초모활동(招募活動)에 큰 비중을 두었다. 초모활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창설할 때 큰 방향이 설정되었다. 한국광복군편련계획대강(韓國光復軍編練計劃大綱)의 징모방법을 통해 초모활동의 대상과 방법을 규정하였는데, 주요 대상은 만주독립군, 적 점령 지구와 국내 및 동북 지역의 한인 장정, 일본군 내 한인 사병 등이었다. 징모처는 기간병을 충원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중시되었으며, 전선과 가까운 곳에 설치하였다.
제3징모처에서 활동하던 정영은 이후 전선과 가까운 곳을 피해 후방인 시안[西安]으로 이동하여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복무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귀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