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태어나 만주로 이주하였다. 천도교인이다.
1919년 3월 북간도 룽징[龍井]에서 일어난 3·13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24년 11월에는 대동회(大同會) 선전원으로 활동하였다. 대동회는 1924년 5월경 지린성[吉林省] 안투현[安圖縣]에서 연두익(延斗翼), 박춘산, 박창열, 조백 등이 청년회를 개편하여 조직한 단체이다. 총부는 어무현[額穆縣]에 설치하였으며, 구국단, 국민회, 의용군사회, 광복단, 독군부(督軍府) 대원들이 참여하였다. 창립 직후 중앙집행위원인 함경남도 북청군 청해면 출신 김관(金瓘)을 간도 지역에 특파하였는데, 이때 장태화가 김관 휘하로 들어갔다. 1924년 11월 28일 룽징촌 시내 잡화상 지남극에게 대동회 선전문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발행 독립공채권을 제시하면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같은 달 30일에는 룽징촌 자산가 오명언에게 군자금 모금을 시도하였으며, 12월 17일 체포되었다.
일제는 장태화를 체포하고 취조하는 과정에서 향후 군자금 모금 계획을 추궁하였지만,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가 군자금을 모금하였다는 사실이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는데, 남자 대원보다도 더 활동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였다는 평가를 내렸다. 1925년 5월 8일 이른바 대정 8년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출소 후 룽징의 천도교 주1을 근거로, 안투현 일대에서 독립운동 단체와 연락하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외 무기 보관과 은닉 등의 활동도 전개하였다. 이후 행적은 알 수 없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