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9월 15일에 태어났으며, 본적은 서울이다. 남편은 황해도 서흥군(瑞興郡) 출신 이서룡(李瑞龍)이다.
만주 신징[新京]에서 보통학교를 중퇴한 뒤 만주국 도서주식회사 직공으로 일하였다. 중국 산시성[山西省] 타이구[太谷]와 루안[潞安]에서 일을 하다 한국광복군 공작원 김천성(金天成)을 만났다. 김천성은 1939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아나키즘 계열 청년들이 결성한 항일 무장 조직인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시안[西安]으로 이전하자, 전지공작대는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되었다.
한편, 1942년 7월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제되면서 제2지대의 확대 개편이 이루어졌다. 정영순은 김천성의 공작에 의해 제2지대의 활동 지역이자 적 점령 지구였던 루안 지역에서 협조자로 활동하였다. 이서룡, 차영철(車永澈), 정태희(鄭泰熙), 정기주(鄭起周), 권혁상(權赫祥), 정윤희(鄭允熙) 등과 함께 후방에서 적 활동을 탐지하고 초모활동을 지원하였다. 한국광복군은 군 인원의 확충과 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조직의 외연을 확대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적 점령 지역에서 협조자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남편 이서룡은 1945년 3월 사망하였으며, 정영순은 해방 이후 귀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