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조소앙이 일본으로 유학 갈 때 동행하였으며, 1910년대에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조소앙과 함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 후에는 한국독립당 산하 단체로 1940년 6월 17일 창립한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의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한국혁명여성동맹은 독립운동가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대외적으로 임시정부 홍보 활동도 담당하였다.
1944년 3월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한국독립당은 1939년 5월 9일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3개 정당 조직이 취소된 이후 새롭게 출범한 통일 정당으로, 쓰촨성[四川省] 치장[綦江]에서 창당되었다. 이 단체는 한중연합전선을 구축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여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중앙조직부 산하에 총 5개 구(區) 조직을 설치하였다.
치장에 머무를 때 시부모의 초상을 치렀고, 해방은 충칭[重慶]에서 맞이하였다. 1945년 광복 후 환국하여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였다. 남편 조소앙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납북되었으며, 오영선은 1961년 2월 8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입원 중 사망하였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