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선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오복순(吳福順)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87년
사망 연도
1961년
출생지
경기도 양주군(현 양주시)
주요 경력
한국독립당 당원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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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오영선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남편 조소앙과 함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 후 충칭에서 성립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3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해방을 충칭에서 맞이하였다. 광복 이후 환국하여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였고,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1887년 경기도 양주군 남면 황방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오복순(吳福順)이다. 독립운동가 조소앙(趙素昻)과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조인제, 조필제를 두었다.

주요 활동

남편 조소앙이 일본으로 유학 갈 때 동행하였으며, 1910년대에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조소앙과 함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 후에는 한국독립당 산하 단체로 1940년 6월 17일 창립한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의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한국혁명여성동맹은 독립운동가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대외적으로 임시정부 홍보 활동도 담당하였다.

1944년 3월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한국독립당은 1939년 5월 9일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 3개 정당 조직이 취소된 이후 새롭게 출범한 통일 정당으로, 쓰촨성[四川省] 치장[綦江]에서 창당되었다. 이 단체는 한중연합전선을 구축하고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여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중앙조직부 산하에 총 5개 구(區) 조직을 설치하였다.

치장에 머무를 때 시부모의 초상을 치렀고, 해방은 충칭[重慶]에서 맞이하였다. 1945년 광복 후 환국하여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였다. 남편 조소앙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납북되었으며, 오영선은 1961년 2월 8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입원 중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단행본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34』(국사편찬위원회, 2011)
김희곤, 『대한민국임시정부 1: 상해시기』(독립기념관, 2008)

논문

김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여성들의 독립운동: 1932~1945」(『역사와경계』 68, 경남사학회, 2008)

신문·잡지 기사

『경향신문』(1961. 2. 9.)
『동아일보』(1959. 5. 1.)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주용(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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