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남편 조시원이 중국으로 망명하자, 1923년 남편의 뒤를 이어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1940년 6월 충칭[重慶]에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의 일원으로 방순희(方順熙), 정정화(鄭靖和)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40년 한국독립당 창립위원, 1941년 한국독립당 충칭 강북구당(江北區黨)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1월에는 한인애국부인회(韓人愛國婦人會) 재건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을 맡았다. 이 단체는 여성의 각성과 분발 촉구, 중국인 및 한인 병사들에 대한 위문품 전달, 전쟁 피해 한인 구제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한 기관지 『부녀의 앞길』을 발행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하에 아동국어학습반을 개설하여 한인 자제를 위한 민족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4년 사망하였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