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승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 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02년
사망 연도
1994년
출생지
서울
주요 경력
한국혁명여성동맹 회원, 한국독립당 창립위원, 한인애국부인회 집행위원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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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순승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 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남편은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부관 등을 역임한 조시원이다.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한국독립당 창립위원, 한국독립당 충칭 강북구당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43년 1월에는 한인애국부인회 재건에 참여하여 교육 및 각종 독립운동 관련 활동을 수행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 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1902년생이다. 본적은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남면(南面) 황방리(篁芳里)인데, 이는 남편의 본적을 따르도록 한 호적법상의 주소이다. 한국독립당 당원 명단에 경성(京城)으로 본적이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서울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남편은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부관 등을 역임한 조시원(趙時元)[^1]이다. 딸 조순옥(趙順玉)은 한국광복군 여성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주요 활동

1920년 남편 조시원이 중국으로 망명하자, 1923년 남편의 뒤를 이어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1940년 6월 충칭[重慶]에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의 일원으로 방순희(方順熙), 정정화(鄭靖和)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40년 한국독립당 창립위원, 1941년 한국독립당 충칭 강북구당(江北區黨)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1월에는 한인애국부인회(韓人愛國婦人會) 재건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을 맡았다. 이 단체는 여성의 각성과 분발 촉구, 중국인 및 한인 병사들에 대한 위문품 전달, 전쟁 피해 한인 구제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한 기관지 『부녀의 앞길』을 발행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하에 아동국어학습반을 개설하여 한인 자제를 위한 민족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4년 사망하였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참고문헌

단행본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44: 사진자료』(국사편찬위원회, 2011)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34: 한국독립당 Ⅱ』(국사편찬위원회, 2009)
김희곤, 『대한민국임시정부 연구』(지식산업사, 2004)

논문

오은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의 결성과 항일공연예술 활동」(『한국근현대사연구』 87, 한국근현대사학회, 2018)
김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여성들의 독립운동: 1932∼1945」(『역사와경계』 68, 부산경남사학회, 2008)

신문·잡지 기사

「치료비없어 사경에…여자 항일독립투사」(『조선일보』, 1968. 5. 19.)

기타자료

「독립운동가 오희옥 구술역사자료」(독립기념관)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趙素昻)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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