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평국은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고, 제주여자청년회, 근우회 도쿄지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재학 중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말 졸업 후, 7년여간 제주 및 전라남도 일대에서 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또한 제주 지역에 여러 여성 단체를 설립하여 여성의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26년 도쿄에서 유학하며, 근우회 도쿄지회, 동경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 부인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1900년 전라남도 제주군[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강두훈(姜斗勳)과 홍소사(洪召史)의 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강년국(姜年國)이며, 세례명은 아가다이다.
1909년 제주 신성여학교에 입학해 1914년 졸업하였다. 1914년 동문 고수선(高守善), 최정숙(崔貞淑)과 함께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본과에 진학하였다. 1918년 졸업 후 같은 해 4월 사범과에 진학하였다.
1917년부터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박희도(朴熙道)에게 민족운동과 관련한 교육을 받았다. 1919년 2월 말부터 만세운동 계획을 알고 준비하여, 3월 1일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의 만세 행진을 주도하였다. 3월 5일 2차 시위에도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3월 말 석방 직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제주로 귀향한 강평국은 1919년 4월 1일 자로 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임명되었다. 1919년 대정공립보통학교, 1920년 진도공립보통학교, 1925년 조천공립보통학교 등에서 근무하였다. 같은 기간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여성 해방과 독립정신을 강화하는 활동도 전개하였다. 1921년에 여성의 문맹 퇴치와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여수원(女修園)을 설립하였고, 1924년 조천부인회, 1925년 제주여자청년회를 창립하였다.
1926년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해 일본에 체류하며, 근우회(勤友會) 도쿄지회를 설립하였다. 동경조선노동조합 동부지부 부인부 위원,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부인부 위원, 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 등의 임원으로 활동하며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매진하였다.
1930년경 건강상의 이유로 제주로 귀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33년 1월 모 사건과 연루되어 광주로 구인되었고, 같은 해 8월 12일 사망하였다. 관련 자료의 부족으로 확언할 수는 없지만, 강평국이 연루된 사건은 광주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의 비밀결사 모임인 백청단(白靑團) 사건으로 추정된다. 이 단체는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으로 결성된 단체로, 1932년 연말 경찰에 발각되어 나주, 곡성, 광주, 제주 등 전남 일대에서 관련자 십수 명이 체포되었다. 다만, 자료의 부족으로 강평국의 해당 단체 활동 여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1981년 동료 및 제자가 성금을 모아 제주도 황사평제주교구 묘지에 강평국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2019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