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선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 · 의사 · 여성운동가.
이칭
우인(又忍), 우당(又堂)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98년
사망 연도
1989년
본관
제주(濟州)
출생지
전라남도 대정군(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주요 경력
제주여자청년회 사회부 집행위원, 대한여자국민당 논산지구당 위원장, 대한부인회 제주도지회장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관련 사건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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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고수선은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의사·여성운동가이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1926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했다. 제주여자청년회에서도 활동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대한여자국민당 논산지구당 위원장, 대한부인회 제주도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 외 모자원과 보육원 등도 운영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의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 · 의사 · 여성운동가.
인적사항

1898년 8월 8일 전라남도 대정군[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에서 고석조(高錫祚)와 오영원(吳榮元)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호는 우인(又忍) · 우당(又堂)이다.

주요 활동

1910년 신성여학교, 1916년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여자잠업강습소 1년 과정을 졸업하였다. 1916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2학년으로 편입하였다. 1918년 졸업 후 같은 학교에 부설된 사범과에 입학하였다. 1919년 3월 1일, 같은 제주도 출신 사범과 동기생인 강평국(姜平國), 최정숙(崔貞淑) 등과 함께 탑골공원에 가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그 뒤 적색 댕기를 수천 매 제작하여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벽보를 붙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해 3월 25일 경성여자고등학교 부설 사범과를 졸업하고, 4월 논산공립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다.

1919년 교사 재직 중에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이 일로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요시오카[吉岡] 의학전문학교(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다. 1921년 도쿄[東京] 우에노공원[上野公園]에서 이덕요(李德耀), 이낙도(李樂道), 이의향(李義鄕) 등과 독립운동을 모의하다가 일경에게 연행되어 고문을 받았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이 발발하자 귀국하였으며, 1924년 4월 경성의학전문학교에 편입하였다. 1926년 3월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의원 내과에 실습생으로 들어갔다. 그 뒤 경기도 개성에 있는 남성의원(南星醫院) 소아과에서 근무하다가 고향인 제주도로 귀향하였다. 1927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출신의 김태민(金泰玟)과 결혼 후 조천(朝天)에 장춘의원(長春醫院)을 개업하였다. 제주여자청년회에서도 활동하였는데, 1928년에 사회부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여자국민당 논산지구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1년 제주도로 돌아가 건국 운동, 사회운동에 앞장섰고, 제1대 도의원, 제3대 민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 외 대한부인회 제주도지회장, 여성저축생활 제주지부장 등을 역임하고, 제주모자원과 홍익보육원, 선덕새마을어린이집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등 여성과 아동의 복지, 권리 신장을 위해 활동하였다. 1989년 8월 11일 제주도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8년 용신봉사상, 1980년 만덕봉사상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단행본

『제주여성사 2: 일제강점기』(제주발전연구원, 2011)

논문

한금순, 「1920년대 제주여자청년회의 성격과 활동」(『제주도연구』 56, 제주학회, 2021)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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