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의사·여성운동가.
인적사항
주요 활동
1919년 교사 재직 중에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이 일로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요시오카[吉岡] 의학전문학교(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다. 1921년 도쿄[東京] 우에노공원[上野公園]에서 이덕요(李德耀), 이낙도(李樂道), 이의향(李義鄕) 등과 독립운동을 모의하다가 일경에게 연행되어 고문을 받았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이 발발하자 귀국하였으며, 1924년 4월 경성의학전문학교에 편입하였다. 1926년 3월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의원 내과에 실습생으로 들어갔다. 그 뒤 경기도 개성에 있는 남성의원(南星醫院) 소아과에서 근무하다가 고향인 제주도로 귀향하였다. 1927년 경성의학전문학교 출신의 김태민(金泰玟)과 결혼 후 조천(朝天)에 장춘의원(長春醫院)을 개업하였다. 제주여자청년회에서도 활동하였는데, 1928년에 사회부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대한여자국민당 논산지구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1년 제주도로 돌아가 건국 운동, 사회운동에 앞장섰고, 제1대 도의원, 제3대 민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그 외 대한부인회 제주도지회장, 여성저축생활 제주지부장 등을 역임하고, 제주모자원과 홍익보육원, 선덕새마을어린이집을 개설하고 운영하는 등 여성과 아동의 복지, 권리 신장을 위해 활동하였다. 1989년 8월 11일 제주도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제주여성사 2: 일제강점기』(제주발전연구원, 2011)
논문
- 한금순, 「1920년대 제주여자청년회의 성격과 활동」(『제주도연구』 56, 제주학회, 2021)
인터넷 자료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고수선](https://seogwipo.grandculture.net/seogwipo/toc/GC04600895?requestBy=%ec%a0%84%ea%b5%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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