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계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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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기생 출신으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칭
개명
현인권(玄仁權)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96년 추정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경상남도 밀양군(현 밀양시)
주요 경력
대구 기생조합 예기, 의열단 단원
관련 사건
황옥경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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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현계옥은 일제강점기 기생 출신으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대구기생조합 소속 예기로 활동하다 1913년 독립운동가 현정건과 만나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1919년 현정건을 따라 중국 상하이로 가서 의열단에 가담하였다. 의열단에서 폭탄 제조, 운반 등의 활동을 도우며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32년 현정건이 사망한 후 외몽골로 갔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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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기생 출신으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1896년생으로 추정되며, 경상남도 밀양군에서 1남 3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이명은 현인권(玄仁權)이다.

주요 활동

17세 때 대구기생조합 소속 주1가 되었다. 1913년 손님으로 찾아온 현정건(玄鼎健)과 사랑에 빠졌으며, 현정건이 중국으로 간 후 서울로 이주하여 다동기생조합(茶洞妓生組合)에 들어갔다. 1917년에는 다동기생조합을 나와 영호남 출신 기생들과 함께 한남기생조합(漢南妓生組合)을 창립하였다. 현계옥은 이 무렵부터 사상기생의 모습을 보였으며, 임진왜란 당시의 의기(義妓)인 논개와 계월향(桂月香)의 사당 중수(重修)에 관여한 일로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1919년 독립운동 자금 조달을 위해 밀입국한 현정건과 해후하고 그의 독립운동 동지가 될 것을 결심하였다. 그해 서울을 떠나 지린[吉林]에서 현정건과 합류한 뒤, 1920년 상하이[上海]에 도착하였다. 현정건과 함께 상하이에 머물면서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폭탄 투척법과 주2 쏘는 방법을 배우고, 거사용 폭탄의 제조와 운반을 돕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23년에는 경기도경찰부 경부 황옥(黃鈺)이 의열단 단원과 접선하여 국내에 폭탄을 밀반입하려 한 사건에 관여하였다.

1925년 이후에는 현정건이 청년동맹회를 주축으로 사회주의 계열 민족 혁명 운동을 이끌어가는 데 주력하자, 이에 보조를 같이하여 활동하였다. 이 밖에 1926년 창간된 국한문 잡지 『여자해방(女子解放)』의 발간에도 참여하였다.

1928년 현정건이 한인청년동맹(韓人靑年同盟) 상하이지부 사건으로 일본 총영사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되어 징역 3년을 언도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게 되자, 현계옥은 1931년 7월 상하이를 떠나 모스크바로 갔다고 한다. 현정건은 1932년 6월 출옥하였으나, 6개월 만에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현계옥은 이에 크게 상심하여 외몽골로 갔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참고문헌

원전

「연애소사」(『삼천리』 6-11, 1934. 11.)
「붉은 연애의 주인공들」(『삼천리』 17, 1931. 7.)
이능화,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한남서림, 1927)
「기미춘에 변장출경 석일은 화류명성」(『동아일보』, 1925. 11. 1.)
『조선미인보감(朝鮮美人寶鑑)』(조선연구회, 신구서림, 1918)
「현계옥 구류 칠일」(『매일신보』, 1917. 7. 17.)

단행본

『몽양여운형전집 1』(한울, 1991)

논문

김영범, 「기생에서 혁명가로, 현계옥의 사랑과 자기해방의 고투」(『지역과 역사』 45, 부경역사연구소, 2019)
김명섭, 「1920년대 한인 의열투쟁과 여성」(『여성과 역사』 28, 한국여성사학회, 2018)
주석
주1

노래, 춤, 그림, 글씨, 시문 따위의 예능을 익혀 손님을 접대하는 기생. 우리말샘

주2

탄알을 재는 구멍이 여섯 개 있는 권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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